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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니체의 운명론

니체의 운명론, 그리고 나의 운명론

by 미드스태리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어느 정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인생의 멋들어진 방향을 세우고 싶은 순간이 있다. 얕은 바다를 벗어나 깊은 바다를 나아갈수록 좀 더 힘차고 폼나게 항해하고 싶은 선장의 마음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 문장은 그때쯤 내 눈을 번뜩이게 한 구절이었다. 우리에겐 김연자 선생님의 트로트 노래로 더 익숙한 문장이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니체라는 철학가가 제시한 운명론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니체를 잘 알지도, 니체의 저서를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이 구절을 발견한 순간 마치 나와 함께 항해할 나침반을 찾은 순간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해한 니체의 운명론은 단지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이런 말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삶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평가하고 탓하는 순간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마주하고 이해해 준다면 더 이상 내게 있어서 불운한 운명이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니체의 운명론을 모르고 살았을 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터득한 가치관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 이후 SNS 계정 나의 소개글에는 버젓이 “Love your fate”가 자리했다. 나의 인생은 곧 이러한 신념이 있다는, 혹은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선언적인 행동이었다. 내 인생에 이름표를 달아놓은 듯 당분간은 삶의 방향이 내가 선언한 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 즐거운 일이 펼쳐질 때마다 역시 나의 운명은 옳은 길로 가고 있다며 마음껏 기뻐했고, 당장의 상실에 대해 슬퍼하기보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나의 운명은 무엇일지 기대하게 됐다. 꽤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 것 같아 친구 여럿에게도 각자의 인생 모토를 정해보라며 추천을 해줄 정도로 나는 나의 삶에 만족했다. 어떤 일이 생기든 마치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기분 좋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시절도 영 끝난 것인지 아주 무기력한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는 최근을 보내며 잠깐 그때 당시의 내 모습을 회상해 본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진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한 마디의 문장으로 자기 확신을 가지며 지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기 확신은 무슨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방향조차도 못 잡겠는데 말이다. 얼마 전 회사 선후배와 점심 자리에서 여름휴가계획 일정을 이야기하던 차에 나는 휴가를 안 가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에 나는 어차피 여행을 갔다가 다시 이 현실로 복귀해야 하는데 뭐 하러 여행계획을 짜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 순간의 정적과 찾아온 어색함.. 나 또한 나의 대답에 흠칫하며 내가 나도 모르는 순간 깊은 무력감에 허우적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여행 욕구가 사라지고, 식욕이 사라지고, 생각이나 행동이 느려지면 우울증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쩌면 나도 우울증이려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무력감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취미가 없어서 그런가.. 무언가를 다시 배워볼까, 아냐 아냐 여행을 떠나야 하나? 하지만 생각할수록 문제는 나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나의 모습을 더 이상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때는 있었던 자기 확신이 지금의 나에게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언젠가 글을 같이 쓰는 선배가 나의 글을 읽고는 “너의 글을 보면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인데, 한 번 더 길게 써보는 건 어때? 내용이 짧은 게 좀 아까워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선배가 말한 내용에 공감했지만, 순간 내가 더 길게 쓰지 못해야 하는 이유가 먼저 떠올랐다. 글을 쓰다 보면 보통 한 주제로 A4용지 한 바닥 정도를 쓰게 되는데 나의 글은 항상 한 바닥에 약간 못 미치거나 애매하게 넘는 수준의 양이었던지라, 그럴 거면 깔끔하게 내용을 덜어내고 한 바닥만 채우자는 마음이 크다고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대답은 멋지지 않았다. 그러자 선배는 “글씨 크기를 줄이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쿵- 내 머릿속을 무엇인가 강타한 것 같았다. 심플했다. 맞다, 글씨 크기를 줄이면 내가 원하는 A4용지 한 바닥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가 있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많고 많은 이야기를 그다지 중요치 않은 종이 1장에 담아내야 한다는 강박, 내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반증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나에게 다시 한번 니체의 운명론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좋아해야 내가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존중해야 나의 모든 행동들이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 “Love your fate”라는 한 마디가 당시 몇 년 간 내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결정한 것처럼, 그리고 그 태도 덕에 당시 일상의 활기를 힘껏 유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때처럼 무언가의 강력한 내적 선언이 필요하다.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에서 더 나아가 “너 자신을 사랑하라” 정도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결국에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위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열심히 탐구해 봐야겠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살아나가고 싶은지를 그려야겠다. 가끔은 살아있음에 눈물 나도록 감사해보기도 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집중해 봐야겠다. 때로는 달갑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 언정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가볍게 넘겨짚기도 해 봐야겠다. 스스로가 미련하다고 생각될 때쯤 미련하기보다 나는 그저 내가 맡은 바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내가 받은 것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이라며 나 자신을 안아줘 봐야겠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하루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보자.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불편한 감정을 머금고 있기보다 가끔은 뱉을 줄도 알고 다시 상쾌한 상태를 유지하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보자. 또 다른 멋진 운명을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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