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길을 걸을 때 상점에서 저마다의 캐롤송이 울려 퍼진다. 익숙한 노랫소리에 성탄절의 분위기가 물씬 달아오른다. 머라이어 캐리가 부른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나 캐니지의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등 제목만 읽어도 새하얀 눈송이가 머리 위로 휘날리는 기분이 든다. 노란 낡은 전등이 내가 걷는 길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고, 소복소복 쌓인 눈 위를 춤추는 듯 걷는 사람이 연상된다. 두 귀는 추위에 빨갛게 얼어붙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떠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홀짝이며 모닥불 장작이 벌겋게 타는 모습이 생각난다. 옆에서는 백발의 할머니가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고, 고양이는 폭신한 카펫 위에서 졸고 있을 것이다. 여러 색상의 전구들이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는 선물 꾸러미들이 놓여있고,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걸어가면서 소원을 빌 것이다. '오늘은 울지도 않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었으니까 꼭 좋은 선물 주세요.' 창 밖에는 흰 눈이 펑펑 내리고 , 나뭇가지 위에 소복소복 행운을 빌어준다. 그리고 난 생각하겠지.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쯤 오실까?'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난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노래 가사처럼 산타할아버지는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착한 일을 했는지 나쁜 일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부모님 말은 잘 들었는지, 착하게 지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단순한 노래 가사이지만 메세지는 강력했다. '울면 안 돼'로 우리나라에서 더 잘 알려진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노랫말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으려면 울지 말고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나는 울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울면 너는 선물을 못 받아. 안 그러면 너는 나쁜 아이야.'
you better watch out (주의하는 게 좋을 거예요)
you better not cry (울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you better not pout (토라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I'm telling you why (왜 그런지 말해줄게요)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산타 할아버지가 오거든요)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노래 가사 중-
울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슬픔은 참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엄지손톱으로 손가락 끝을 누르면서 참아냈다. 절제된 감정은 이따금 커피포트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까 봐 나는 입을 틀어막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곤 했다. 솔직하게 내 감정을 터트리고 싶어도, 나의 우는 모습은 추했고 내가 상처 받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웠다. 때로는 마음껏 울고 싶기도 했지만 여기서 울어버리면 내 힘듦을 인정하는게 되버렸다. 나의 아픔이 엄마 아빠한테 전달되는 것이 싫었다. 나는 슬픔에 '지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느 날 책을 읽고 있었는데, 저자가 공원에서 울고 나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그 글을 보고 나도 한 번 울어봐야지 생각하고 엄마 아빠가 외출한 후에 방문을 잠그고, 침대에 앉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할까 생각했다. 머릿속에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힘든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슬펐던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분명 많이 아팠었는데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입으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눈물이 말라버린 걸까?'
나는 노래 가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노래만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곡을 핸드폰에서 틀었다.
눈물의 플레이리스트
펑펑-알리 https://www.youtube.com/watch?v=d4eDv97ETC8
거위의 꿈-인순이 https://www.youtube.com/watch?v=suXnFAxMK78
울컥-크리스탈 https://www.youtube.com/watch?v=dvm_M0ULI40
미아-아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vjVS1tyNpGs
한숨-이하이 https://www.youtube.com/watch?v=z40WZcL9e5I
Butterfly-국가대표 ost
나는 나비-윤도현 밴드
내가 우는 것은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아픔을 직면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잘 안됐지만 가사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눈물이 한 방울 뚝하고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은 막혀있던 댐을 뚫고 노아의 방주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층간소음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 울음소리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보다 컸다. 얼마쯤 지났을까, 책의 내용처럼 갑갑했던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인과관계를 생각하며 울었더니 끊임없이 슬픈 생각들이 이어졌고, 나는 그렇게 울었다.
흠뻑 젖어 있던 수건은 어느새 물이 떨어졌다. 목이 메말라 물이 필요했다. 핸드폰을 켜 시계를 확인해보니 족히 2시간은 운 듯했다. 세삼 층간소음이 걱정됐다. 주변을 둘러보니 침대 위에는 뭉쳐진 티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 만큼이 내 슬픔의 무게일까?’ 정신없이 운 흔적들을 손으로 집었다. 하나, 둘, 셋, 넷... 휴지통에 눈물구슬들이 똑똑 떨어진다. 내 미련과 걱정, 두려움들이 내 손을 떠났다.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한테도 위로받지 못한 내가 나 자신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내일은 좀 더 힘을 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