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평생토록 기억하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
8월 27일, 엄마와 나는 이모, 사촌언니와 함께 외할머니 생신에 맞춰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갔다. 김포에 있는 산소는 1시간가량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멀미가 심할 거란 우려와 달리 나는 별다른 탈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은성 언니와 나는 “우리 점심에 초밥 먹을래?” 하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차 밖으로 나왔다. 기지개를 켜며 상쾌한 공기 냄새를 들이쉰다. 흐읍- 몸이 노근 해지며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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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스산한 공동묘지와 달리 이곳은 햇볕이 잘 들었다. 양지바른 곳곳에 화초들이 심어져 있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높이 솟아 오른 나무들과 꽃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맞추어 저마다 춤을 춘다. 줄 맞추어 있는 무덤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언니와 나는 엄마, 이모와 함께 들쑥날쑥 자란 잔디들을 밟으며 할머니의 산소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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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삶은 기구했다. 꽃다운 나이 18살에 외할머니는 중매자에게 속아 애가 넷이나 딸린 집한테 사기 결혼을 당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집을 온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낳으시고, 총 9명의 아이들을 자신의 힘으로 키워 내셔야 했다. 하늘이 그런 몰상식한 남편을 벌 준 건지, 아니면 할머니를 천벌 한 건지 친할아버지는 곧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도 여자 혼자 애 키우기가 힘든 세상인데, 1950년도는 상상조차 끔찍했을 만큼 험난했을 것이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한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오셨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나는 사촌 오빠네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영어 학원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이모 핸드폰에 걸려온 ‘오늘 밤은 넘기시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전화 한 통에 이모부는 일산 백병원으로 차를 급히 돌렸다. 오랜만에 마주한 할머니의 모습은 영혼이 쏙 빠져 난 것처럼 메말라 있었다. 학원도 빠지고 할머니도 봐서 기분이 뛸 듯이 좋았으나, 하나같이 심각하고 엄중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자, 나와 사촌 언니 오빠들은 할머니의 임종을 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큰 외삼촌 댁에 갔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인원이 외삼촌 네 집에서 쉬었다. 새벽 두세 시경, 재형 오빠와 나는 둘 다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한참 보고 있었다. 갑자기 제희 언니가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뭐지?’ 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할머니... 돌아가셨데.” 뭉개진 발음이었지만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소식에 계속 텔레비전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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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관이 흙더미 속에 묻힐 때, 난 비로소 통곡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진행될 때도 나는 그저 학교를 빠져서 기쁘기만 했다. 엄마가 조문객을 맞는 와중에도 사촌 오빠들과 철없이 동물농장 게임을 하고 있었다. 흙이 관위에 흩어지고 꽃잎을 뿌리면서 드라마에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TV 볼 때는 왜 우는지 몰랐는데, 막상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하나둘씩 사람들의 울음주머니가 터졌다. ‘아,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이제는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구나.’ 빠르게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추억이 지나갔다.
살아생전 누구나 하는 후회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온다고 했을 때 싫어하지 않을 걸.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랑 더 놀아드릴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릴 걸..’ 의미가 없는 뉘우침을 갓 12살에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불안에 떨면서 남은 초등학교 세월을 보냈다. ‘엄마도 아빠도 나를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자? 과연 내가 지금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가?’ 할머니의 죽음을 고찰하면서 학원도 점차 끊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고 나를 자책을 하는 삶은 정말 끔찍했었다.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 같던 할머니의 죽음이 이제는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무뎌졌다. 노랗게 핀 잔디들로 덮인 무덤을 봐도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보드라운 바람결이 스쳐 지나가고, 엄마와 이모는 할머니의 산소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성묘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는 모두 말이 없었다. 싱그러운 햇살이 비춰오고, 재잘거리는 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할머니께서 그 순간만큼은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계시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눈을 감고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진심으로 빌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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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 의 순 님, 당신을 평생토록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