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란 무엇일까 : 양재동 꽃시장에서
아름다움이란...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 돌아왔다. 엄마와 나는 계절에 맞게 집 안을 화사하게 꾸미려고 양재동 꽃시장을 방문했다. 3월 달인데도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우 추워.” 머리카락이 자꾸 입 안으로 들어온다. 자동차 유리문을 거울삼아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했다. ‘완전 떡졌군.’ 나는 떡진 머리를 가리려고 털모자를 썼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에스키모였다.
썰렁한 시장 외관은 도저히 꽃을 판매한다고 보이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주변에는 온통 말라비틀어진 나무들과 깨진 화분들이 널려있다. ‘시들었다고 다 버려버렸네.’ 씁쓸한 광경을 뒤로하고 나와 엄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온 시장 안의 공기는 열대야 수준으로 후끈후끈했다. 난로를 피워놓은 것 같은 아늑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 따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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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놓인 여러 종류의 꽃들이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구애를 했다. ‘날 봐. 아름답지 않니?’ 다홍빛의 카랑코에가 말했다. ‘아니, 날 보라니까? 내가 더 빼어나지 않니?’ 선명한 노란색을 가진 프리지아가 자신의 미모를 뽐내며 말했다. 나는 화려한 꽃 봉오리들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될지 몰랐다.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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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는 한참 동안 식물들을 감상하며 비닐하우스 안을 걸어 다녔다. 털모자에 덮인 두피 속에서 땀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 빨리 사고밖에 나가자.’ 그 순간, 알록달록한 이끼처럼 생긴 스칸디아모스가 보였다. “엄마! 이거는 공중에 습도를 먹고 자라 물을 안 줘도 된데!” 해초 같기도 하고 산호초같이 생긴 이 녀석은 공기 정화도 된다고 써져있었다. ‘내 방 책꽂이 위에 놔두면 정말 예쁘겠다.’ 나는 키우기 쉬울 것 같아 주먹만 한 스킨디아모스 화분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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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쪼그만 다육이의 유혹을 간신히 버터 낸 나는 돈을 굳이 아낀 까닭. ‘아니 이렇게 지갑만 사수할 거면 여기 온 이유가 없잖아?’ 내 속마음을 알아챈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때?’ 한 나무가 연두색의 잎과 노랑, 주황, 빨간색의 잎사귀들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거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 마치 포토샵으로 그러데이션을 한 것 같이 자연스러운 발색을 가진 나무는 내 키만 했다. ‘여러 종류의 식물들을 교배한 건가? 이름이 크로톤인가 보네.’ 나는 영롱한 빛깔에 지갑을 열었다.
“이거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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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난 좀 사고 올게.”
엄마가 아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말했다. “아니 난은 또 사서 어디다 두게? 엄마 사무실에 둘 거야? 엄마 마음대로 결정할 거면 아까 다육이 사자고 했을 때 말리지 말지!” 도도하고 비싸 보이는 난을 나는 싫어한다. 내 대답이 들리지 않는지, 엄마는 먼저 저만치 가버렸다. 나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많은 난 뿌리들 사이에서 나를 향해 고개를 내미는 기다란 난을 보았다. 마치 메두사의 뱀 머리처럼 흉측한 생김새에 나는 얼어붙었다. 사람의 손이 닿은 듯 비이상적으로 꺾인 꽃대들과 난 꽃이 어우러져 이상한 거부감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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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엄마가 근처에서 파인애플 선인장을 사는 동안,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이곳저곳을 두리번댔다. ‘어? 이거 죽은 거 아니야? 산건가?’ 철사를 꼬아 만든 것처럼 생긴 식물은 푸석하게 쪼그라든 줄기를 보는 것 같았다. “되게 특이하게 생겼다! 코로...키아? 완전 인테리어용인데?” 그때, 어두운 구석에서 뿌옇게 빛나고 있는 한 스킨디아모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 스킨디아모스는 내가 전에 샀던 스킨디아모스와 색깔만 다른 똑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생을 이미 마감한 건지 아니면 잠시 잠이든 건지 홀로 쓸쓸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낮에 봤던 버려진 식물들이 생각났다. 익숙했던 광경에 내 손에 든 파릇파릇한 식물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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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득 화초를 사들고 엄마와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색을 잃고 병들은 화분들이 눈에 다시 밟혔다. ‘꼭 나를 보는 것 같네.’ 차에 도착한 뒤 엄마는 뒤 트렁크에 사 온 식물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나는 왼쪽 볼을 따갑게 밝히는 빛에 고개를 돌렸다. 붉은 노을이 빨갛고 노란빛을 선사하며 천천히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 아름답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미를 추구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움 아닐까? 내가 아스팔트 도로 사이에서 피어난 이끼나 잡초를 보면 좋아하는 것처럼 누구한테 굳이 보여주려는 아름다움이 아닌, 강인한 생명력 속의 당당한 아리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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