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문자를 받은 직후, 나는 디나이얼의 반복 때문에 합격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합격 소식에 기뻐하는 부모님 모습이 좋으면서 속상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었다. 엄마 아빠가 기뻐서 우는 건 처음 봤다. 씁쓸했다. 그 전에는 기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대학을 가지 않았던 날들이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강요했던 것도 같고. 문득 내 지난 과거가 미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속 학교에 다니는 건데. 죽어도 학교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난 왜 그토록 대학에 가기 싫어했던 걸까.
대학에 가지 않고도 성공하고 싶었다. 병이 있어도, 대학에 안 가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고 나니 시스템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내가 오를 수 없는 벽. 그런 벽이 보였다. 10대 때까지만 해도 용서되던 모든 방황, 실수, 후회들이 전부 20살이 되는 순간 "스무 살이나 먹고 왜 저래?"로 바뀐다. '이제는 성인이니까, 이제는 똑바로 행동해야지.' 나를 보던 시선들이 아픈 학생에서 아픈 성인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글을 쓰면 쓸수록 공허해졌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가야 진정한 스무 살이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 혼자 열아홉 살에 멈춰있는 것 같았다. 스무 살이 됐는데도 대학도 못 간 한심한 놈으로 보이기 싫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대학을 가야 된다. 증명을 해내야 된다. 내가 쓸모없는 놈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죽어라 문창 입시 준비를 했다. 결과는 합격. 그리고 처음 받아보는 주변 사람들의 축하 세례. 스물 한살이나 먹을 동안 나한테 축하를 해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나? 하긴..그럴 일이 없었으니까. 나를 위해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나도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며 합격 원인을 분석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왜 합격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십 년 동안 축적해둔 행운을 지금 다 몰아 쓴 것 같다. 불안하다. 대체 뭐가? 모르겠다. 그러니까 행운이 여기서 끝날까 봐? 아니야, 그것보다 더 무거운..무언가 불안한데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건지 알 수 없다. 땅굴만 파다 보면 해결되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기뻐서 심장이 뛰는 건지 무서워서 떨리는 건지 헷갈렸다. 창가에 푸른빛이 점묘된다. 나의 불안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행복을 만끽하는 엄마 아빠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생각하고 좋은 일이 있어도 그다음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가정을 세운다. 최악의 경우(=1.나의 죽음, 2.엄마의 죽음, 3.병 악화, 4.다른 병 생김)와 같은 불행이 올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비로소 새로운 챕터가 열리는 데, 그 페이지를 펼쳐보니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백지였으니까. 대학에 들어가고 난 이후의 삶이 쉽게 그려지지 않고 오히려 안 좋은 일들이 도사릴 까 봐 무서웠다. 지금까지 불행 속에서만 살아왔고, 행복이란 걸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런 시추에이션이 처음이라서 어설프게 무섭기만 했던 것이다. 더 큰 불행이 찾아와 절망하고 좌절할 바에 벽을 쌓고 감정을 차단시키려고 한 거지. 대학은 생각도 못해봤으니까.
그토록 원하던 대학을 합격했는데도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건 생각지도 못한 결과라서 일까. 마음 한 켠이 찝찝하다. 목표를 너무 빨리 이룬 탓이다. 적어도 2,3년은 걸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뒤이어 오는 무기력함. 너무 쉬워서 김이 빠졌다. 나는 뭐든 어려웠는데. 삶도 죽음도. 그런데 갑자기 너무 쉬우니까. 허무했다. 나는 지금껏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나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저당 잡힌다는 건 이런 걸 의미하나. 병 하나 때문에 처절했던 내 지난날이 보상받는 느낌은 커녕 화가 났다. 그깟 대학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고생한 느낌도 들고.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의 장난처럼 내 운명을 왔다갔다 쥐어 잡고 있는 꼴이 구역질 난다. 그러면서도 이 줄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 약 올라 미치겠다.
또,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등록금만 축낼까 봐 걱정이 앞섰다. 중학생 시절 희귀병 진단을 받고 학교를 계속 빠지면서, 나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 학교 시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고등학생 때는 가파른 오르막길 때문에 정문을 넘지 못할 정도였다. 서울예대는 계단도 많았고 오르막길도 있었다. 여기를 계속 걸어서 다닐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졌다. 말은 할 수 있다고 해놨지만 쉽지 않을 거란 걸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다행히 엄마가 학교에 전화해서 사정을 전하니 학교 측에서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학교 안까지 차로 갈 수 있게 조치를 해놨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보통이라면 학교 본부동 안까지 걸어가고 중앙계단도 올라가야 하지만, 차를 타서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다동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 '다시 병이 악화되면 어떡할까'와 같은 내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안처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챕터 새로운 스물을 만나기에,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뭉게구름처럼 무성했던 내 소문들, 생각하지도 못한 별의별 말들. 나는 나를 향한 악의적인 시선들을 각오해야 된다. 내가 병이 있다고 해서 이런 혜택을 받는 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곱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나인데, 나를 둘러싸인 소문들이 전부는 아닌데도, 나는 다가오는 내 소문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결국은 나를 좀먹는다는 걸 아는데도, 그 방대하고 어두운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내 뒤에서 날뛰는 것을 미리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한 번 도전한다. 나를 밀어냈던 그 시스템 속에 내 몸을 한 번 더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