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대학에 합격했어요!!!

by 오뉴월의 뉸슬

이럴 수가. 대학에 합격했다. 그것도 내가 원하던 문창과에! 사실 합격한 지 꽤 됐는데 이제야 글을 쓴다: 그 이유를 발설하자면 일단, 글을 쓰기 싫었다. 합격 이후 나는 글자만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 한글이 꼴도 보기 싫었다. 이게 다 시 때문이다. 시만 보고, 시만 읽고, 시만 쓰다 보니 이제껏 내가 어떻게 에세이를 썼는지 까먹어버렸다. 둘째, 합격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었다. 남들 다하는 합격 수기(아직 부끄러워서 올리지는 못했지만)부터 해서 먹고 싶은 거 마음 놓고 먹고, 못했던 게임. 넷플릭스 영화. 드라마(스위트홈이 개봉하고 2주 뒤에 볼 수 있었다.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시리즈를 몰아봤다.


셋째, 합격이 실감 나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게, (그것도 꽤 좋았다) 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합격했다. 물론 말에 어패가 있긴 하다. 나는 문창과 학원을 다녔던 경험이 있다. (한 달 다녔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만두게 되었다. 시를 쓰려고 들어갔는데 학원이 시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 간 시간도 돈도 날리는 것 같아서 직접 네이버 블로그에 검색해서 과외를 신청했다. 그러나 실기 시험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던 터라 과외쌤들마다 못 가르친다며 내 요청을 거부했다. 나는 겨우겨우 "내년을 목표로 하지만 이번 시험도 경험 삼아 보고 싶다."라고 사정해서 지금의 쌤을 만나게 되었다.


서울예술대학교 그 유명한 빨간다리 jpg.




시 과외를 받으면서 학원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었구나 깨달았다. 나는 학원에서 시를 배운 적이 없다. 말하고도 이상하지만 학원은 나에게 시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럼 왜 돈을 내고 한 달 씩이나 학원에 다녔어요? 그러게요.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꽁트를 쓴 게 도움이 돼긴 했다. 또, 사람들과 같이 합평하니까 재밌긴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과외쌤은 시 전공! (system. 시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과외쌤은 터프하셨다. 학원에서 "잘 썼다."라고 "이만하면 서울예대 합격하겠다."라고 호평해준 시들을 몽땅 찌그려서 이런 시는 전형적인 공모전 시라며 서울예대랑 맞지 않다고 하셨다. 이마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아, 나는 지금껏 시를 예쁘게만 써왔구나.' 얼음물로 뇌 속까지 씻어낸 느낌이었다.


나는 과외쌤이랑 시에 대해 처음부터 배워나갔다. 시제를 보고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시의 구조, 상황을 묘사하지 말고 정황을 쓰라 (근데 저 말은 아직도 모르겠다) 등등에 대해서 보이스톡 너머로 배웠다. 웃긴 게, 이때 내 일기장을 보면 온통 시 얘기밖에 없다. 과외쌤한테 시 쓴 걸 평가받으면 일기에 '사유가 부족하다, 화자와 나의 거리가 너무 멀다' 쓰면서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짚어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는 패닉이 왔다. "시험이 미뤄졌으면 좋겠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등등 별의별걸 저주했다.


실기 일주일 전 일기...


시험은 총 두 번, 실기와 면접이었다. 운문 시제는 '거리두기'가 나왔다. 종이에 적힌 '거리두기'를 보고 나는 (좋은 의미로) 코웃음을 쳤다. 코로나 덕분이다. 예상 가능한 시제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마치 이번 시험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이게 나다! 하며 썼다. 결과는 뭐, 합격. 과외쌤이 반항적이고, 유치하다고 말씀하셔서 기대를 안 했는데 됐다. 그때의 심정은? 믿을 수 없었으나 면접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부담감이 생겼다. 처음 실기를 봤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차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차가 돼버렸네. 말도 안 돼!


그래. 지금까지 잘해왔어. 하지만 행운은 여기까지야. 내가 합격한다는 게 가당키나 해? 두 달도 안 배웠으면서 거기서 더 바라면 그건 욕심이지. 학교 성적이 포함되는 2차는 떨어졌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합격 발표 시간이 되기도 전에! 문자로 합격됐다는 문자와 기숙사 신청 안내 문자가 왔다. 심장이 우주로 솟았다가 땅으로 곧두박칠치는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엄마에게 "엄마, 이게 뭐야? 이거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지? 장난이라면 나 진짜 울 것 같은데..." 문자 내용을 보여줬다. 핸드폰을 받아 든 엄마는 펄쩍 뛰며 나에게 말했다. "합격..이네, 합격이네? 시우야 너 합격이래! 합격! 여보 이리 와서 봐요 시우 합격이래요! 합격!" 믿을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충격의 합격 통지서


6시가 되고, 서울예대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 재확인, 다시 확인을 하고 나서야 과외선생님한테 합격했다고 연락했다. 그 사이 엄마는 이모들한테 합격했다며 전화를 돌리고, 아빠는 큰아버지에게 내가 대학 합격했다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환희와 희열로 가득 찬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엄마 아빠한테 자랑거리 하나 못 줬구나 미안했다. 병을 앓고 난 후, 우리 가족한테 경사란 별 탈 없는 게 경사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조금만 좋아지면 다시 안 좋아지곤 했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그 경사가 내 대학 합격이라니. 부모님이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더 빨리 대학에 들어가는 건데. (어차피 빨라도 재수겠지만!)


그런데 왜 나는 불안하고 두려운 것일까. 분명 합격 소리만 들어도 뛸 듯이 기쁘고 눈물 나고 그러지 않나. 왜 난 멍하니 서 있으며 창문 밖을 두리번대는 것일까. 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는 걸까. 왜 나는 지금 내 머리를 때리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 속상한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그토록 바라던 내 꿈. 이번 생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게 한 순간 이뤄졌는데 기쁘긴커녕 슬프고 마음이 좋지 않을까...(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