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코로나 시대에도 삶은 계속된다

by 오뉴월의 뉸슬

순식간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2020년도 마찬가지다. 이렇다 할 것도 없이 벌써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 집 앞에 피어난 하얀 벚꽃나무들을 집 안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날들이 지나갔다. 이제는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는다. 외출하기 전 마스크는 필수가 돼버렸다. 나는 요즘 학원에 다니면서 대학입시를 위해 시를 쓰고 있다. 나뭇잎은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지갑은 시들어간다. 문창과 학원에 다닌 지 4주가 넘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친절하셨다. (내가 낯을 아주 많이 가리는 데도 편했다고 하면 정말 분위기가 좋은 것이다.) 글을 배우면서 마스크 뒤로 웃음이 피실 피실 나왔다. 수업 듣는 게 재밌다니.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인물은 어떻게 만들고, 소설을 어떻게 짜야되는지 하나하나 배우면서 게임 캐릭터처럼 경험치가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광대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내심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사이버대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7시에 학원이 끝나고 차를 타고 가면 7시 50분 정도에 집에 도착한다. 저녁 8시에 실시간 수업이 있기 때문에 번개처럼 계단을 올라가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 쉴 틈이 없다. 6시간의 수업에 지치고 피곤해도 화면 안에 얼굴이 보여야 한다. 배고파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다행히 마이크는 꺼져있다. 나는 슬그머니 화면을 돌려놓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까만 화면에 보이는 입가에 밥풀이 붙은 나 자신이 문득 초라해 보였다.


수업을 3시간 동안 하고, 2시간 동안 시를 쓰면 첨삭을 해주신다. 선생님에게 한 번씩 지적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 내 글을 평가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크게 다가왔다. 특히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돌려 쓰는 법을 알아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마음을 숨기는 글쓰기는 내가 써왔던 글이 아니다. 이제까지 나는 항상 내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하게 썼다. 하지만 소설과 시는 에세이처럼 혹은 일기처럼 쓰면 안 된다. 문학에서는 나를 감추고 숨겨야 한다. 펜을 쥐기도 전에 문장을 잃었다.


학원 수업 자료와 진도 체크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보다 뒤늦게 시작해서 기본을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면 시에도 원고지 쓰는 법이 따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설과 달리 시 부분에서는 제목을 한 줄 띄어 쓰고, 한 줄 더 띄어서 시를 써야 한다. 시를 쓸 때, 앞에 두 칸은 띄어야 하고, 그 줄에서 문장이 끝나지 않으면 한 칸만 띄우고 이어나가야 한다. 또, 다른 날에는 숭실대 합격작을 설명해주시는데 '인물의 9가지 법칙'을 아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아는지 궁금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친구들은 아는 것 같았다. 동떨어지는 듯한 소외감이 느껴졌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른 친구들보다 아는 게 없었다. 말 그대로 나는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점점 위축되면서 글에 대한 재미를 잃어갔다. 혼란스러웠다. '이러려고 학원에 다니는 게 아닌데, 이러려고 글을 쓴 게 아닌데.'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의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불안함과 혼돈만 남았다. '내가 시로 등단할 것도 아니고 엄청난 문학상을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피 빠지게 할 필요가 있을까?' 글 쓰는 게 재미없어지자 글도 쓰기 싫어졌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허상이었을까? 반복되는 비교와 경쟁에 과열된 컴퓨터처럼 머리가 고장 났다.




글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이 과정에도 정답은 없다. 대학 입시를 거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흥미롭게도 나는 '폭설'이라는 주제로 쓴 시를 칭찬받은 일로 단번에 시에 재미가 붙었다. 선생님이 내가 쓴 시를 고쳐야 될 것을 알려주고 나는 집에 와서 퇴고를 했다. 신기하게도 글이 늘어가는 게 보였다. 학원에 처음 와서 썼던 시와 지금 쓰는 시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는 게 눈에 보였다. 뜻을 알기 어려웠던 시집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그러자 시가 판타지 소설처럼 읽혔다. 특히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을 보고 내가 글에 재미를 붙인 처음이 생각났다.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의 설렘이 다시 생각났다. 상실이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 이 상실의 시대에,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Life goes on, Let's live on (Life Goes On- by 방탄소년단 BTS)


© victorchen_vii,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