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by 오뉴월의 뉸슬

고3 여름방학인 7,8월부터 대학 수능 시기 11월까지는 집중의 시간이다. 대학 생각이 별로 없었던 나도 이 시기가 되니 덩달아 불안해져 생각이 많아졌다. 주변의 친구들은 전부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논술, 수능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입시 지옥으로 들끓는 강남의 분위기에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나는 인터넷에서 문창과 카페나 대학교 입시요강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성적이 없어도 손쉽게 가는 방법이 없을까?' 특수교육대상자들을 위한 특별 전형을 찾아봐도 내신과 수능 성적을 안 보는 곳이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성적에 대해 집착을 하냐면, 나는 내신 성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빵점. (고1부터 고3까지 대체 수업으로 화상 강의를 들은 건 내 건강이 원인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 갈 생각도 없었다고!) 하지만 내신을 보지 않는 곳은 수능 성적을 보고, 수능 성적을 보지 않는 곳은 내신을 봤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조금 쉬운 길로 갈려고 했더니 그런 길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필기로 들어가는 학교를 찾아냈다. '아, 그래도 여기는 조금...'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대학교에 나는 실망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던 나는 문창과 학원에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문창과 학원은 공간이 협소했다. 5평도 안 되는 회의실에 엄마와 나는 몸을 움츠려 앉아야 했다. 학원 선생님은 문창과, 국문과, 극작과가 속해있는 학교 명단을 가져오더니 내 성적을 얘기하라고 말했다. 나는 뻘쭘해하며 엄마의 눈을 바라봤다. 엄마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몸이 안 좋아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요."라며 내 말을 가로챘다. 선생님은 난감한 듯 잠시 생각하더니 방안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으려니. "흠흠, 갈 수 있는 데가 3군데밖에 없거든요. 한예종, 가톨릭대, 추계예대 밖에 없네요. 수능을 본다면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어요. 혹시 생각은 없나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능을 볼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세 군데나 가능성이 있다니. 충분한 걸.'


그 길로 엄마와 나는 학원을 등록했고, 처음에는 한주에 두 번씩에서 한주에 세 번씩으로 늘려가며 수업을 진행하자고 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어할까 봐 2주에 한 번씩을 권유했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대학 준비 모드에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집에서 시를 조금 쓰고 있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그동안 썼던 시들과 글들을 모두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분은 이 방법이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해줬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첨삭에 놀랬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드디어 문창과 학원 첫날이 밝았고, 나는 엄마 차를 타고 학원 앞에서 내렸다. 학원에 다니는 건 자그마치 4년 만의 일이라 조금 떨렸다. 나는 심장을 졸이며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소설과 시, 산더미 같은 자소서에 바빴지만 반갑게 맞이해줬다. '드디어 내 시를 평가해주는 건가!' 그분은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내 글이 참 좋다고 말씀해줬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어봤다는 말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족히 50개는 되는 데 이걸 며칠 사이에 다 읽었다고?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낮은 데도 열심히 봐주시다니.' 나는 이 분이라면 믿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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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감상평은 내가 입시에 발 들여놨다는 게 실감 났다. 전공자가 내 글을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이상하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주변에 볼 수 있는 물건을 하나 찾아서 가사처럼 시를 적어오라고 숙제를 내줬다. 그리고 사전에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적어서 등단됐다는 한 시인을 예를 들며, 어휘에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줬다. 이제 수업에 들어가려나 생각하려던 찰나, 선생님은 맨 끝 방에 들어가라며 짐을 챙겨 줬다. "거기에 들어가서 내가 준 시집 필사하고 모르는 단어 있으면 뜻 찾아서 문장으로 쓰고 있어. 때 되면 불러줄게." 문창과 학원은 수학 학원이나 논술 학원과 달랐다. 수업은 내가 상상하던 칠판 앞에서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학원에 있는 동안 기계처럼 시집을 베껴 적고, 사전을 들춰 봐야 했다. 생각과 많이 다른 수업 방식에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얼마 가자 않아 몸이 안 좋아지면서 학원에 가기 조차 불편한 몸이 되어버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올라가야 할 계단이 벅찼다. 또 몸이 안 좋다고 나만 혼자 일찍 보내 주거나, 특별 대우해주는 게 불편했다. 하루는 늦은 저녁에 회의실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한 언니가 울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언니가 쓴 소설을 선생님 둘이서 신랄하게 비평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말이 비평이지 비난에 가까웠고, '애정 어린 회초리' 같은 느낌이아니었다. 언니는 그동안 쌓였던 게 터졌는지 노트북을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나중에 글도 저렇게 되는 아니야?' 그 상황이 무서웠던 나는 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다.



, 대학은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