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죽는 줄 알았어

순천만 여행 중 응급실

by 오뉴월의 뉸슬

촤악.


엄마가 아이보리색 커튼을 걷자 눈꺼풀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눈부셔.'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세제 냄새가 풍기는 뻣뻣한 호텔 이불을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시우야, 어서 일어나야지. 늦으면 아침 못 먹어.”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불 속 나에게 부채감을 줬다. 그 순간,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지 위에 놓여있었다. '밥이냐, 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땡깡을 부리다가 아빠가 성질낼 것 같은 분위기에 못 이긴 척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 밖 햇살이 피부를 콕콕 찔렀다. 나는 기지개를 피며 슬리퍼를 갈아 신었다.


그 날따라 아침밥을 유독 먹고 싶지 않았던 터라, 나는 회색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걸어갔다. "여기 호텔에서는 아침을 하지 않는데. 밖에 나가서 먹어야 겠다." 나는 엄마의 말을 의심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이 묵은 숙소는 아침 조식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바깥에 있는 밥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반집으로 가는 길이 천리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달콤한 아침잠을 깨운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침대에 누워있는 거였는데..." 엄마에게 짜증을 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성나는 마음은 합병증처럼 두통과 배앓이으로 옮겨졌다.






식당은 아침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식당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을 식당 안 빈자리로 안내해줬다. 신발을 벗은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온돌 바닥에 앉았다. 방석을 빼서 들은 엄마는 나와 아빠에게 전달했다. 우리는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벽에 붙어있는 식당 메뉴판을 천천히 정독한 뒤, 백반을 주문했다. 탁자 위에는 ‘백반이 백반이지 다른 게 뭐가 있어.’를 증명하듯이 갖가지 반찬들과 흰쌀밥이 놓였다. '시금치나물, 고사리 볶음, 깻잎 무침...' 나는 계속해서 나오는 채소반찬에 실망해 젓가락으로 밥알만 뒤적거렸다. 테이블 위에는 풀밭 가득 한 상이 차려졌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갈치구이가 나왔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제주도산 갈치구이에 나는 젓가락질을 망설였다. '아, 나 밥 안 먹으려고 했는데.' 없던 식욕을 불러들일 만큼 갈치구이의 위력은 대단했다. 입안에서 흐르는 침을 참을 수 없어 나는 긴 쇠 젓가락으로 따근 따끈한 갈치구이를 잡았다. 갈치의 뽀얀 속살을 확인하는 그때, 생선 껍데기에 덮어져 있던 기름진 냄새가 콧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에서 미세하게 풍기는 비린내를 맡은 나는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했다. 구역질을 하고 나니 음식을 보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평온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나는 코와 입을 틀어막고 허겁지겁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나를 뒤따라온 엄마가 호텔 방문을 열었다. 삐익- 탐탁지 않은 소리와 함께 2시간 전만 해도 누워있었던 침대가 나타났다. 나는 마치 대본에 적힌 지문을 수행하는 것처럼 터벅터벅 침상으로 걸어갔다. ‘열 걸음만 더 가면 침대에 누울 수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기분 나쁜 느낌을 지우고 싶었다. '누워 있다보면 괜찮아지겠지.' 바삭거리는 이불을 덮은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평화로웠던 정적은 얼마 안 가 깨지고 말았다. "여기 문 좀 열어줄 수 있어?" 아빠가 누른 초인종 소리가 복선처럼 한 번 더 기괴한 울음소리를 냈다.


괜찮은 거냐라는 아빠의 눈빛을 알아차리기 전에 토기가 쏠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는 화장실에 다다르지도 못한 채 입 밖으로 토사물을 쏟아냈다. 우왝- 예고 없이 어제 먹었던 음식물들이 난잡하게 잿빛 카펫트 위에 물결처럼 번졌다. 나는 손으로 턱을 받히고 급하게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화장실의 악취가 하수구 냄새와 섞여 코와 입을 통해 들어왔다. 우왝- 나는 세면대에 다시 머리를 박았다. 웁- 쓴 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위액이라도 올라온 듯 식도가 쓰아렸다.



© petekasprzyk, 출처 Unsplash


엄마와 아빠는 나를 데리고 호텔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호텔 정문 앞에는 엄마가 미리 불러놓은 콜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내 모습을 보더니 근처의 가까운 병원으로 빠르게 달렸다. 택시 안에서도 토기는 멈추질 않았다. 나는 안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입가에 댄 검은 비닐봉투를 생명줄처럼 꽉 잡았다. 응급실 안의 간호사는 연이은 구토 증세로 핼쑥해진 내 얼굴을 보더니 바로 침상으로 안내해주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들듯이 부축하며 힘겹게 침대 위로 올라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언제 토를 할지 몰라 까만 봉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액을 맞는 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정신없이 골아떨어졌다. 개운하게 한 숨 푹 잔 나는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간호사는 엑스레이와 혈액 검사 결과상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심 내가 잘못된 줄 알았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도 내가 이러다 죽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한참 생각을 하던 엄마는 '어제 순천만에서 무리하게 돌아다닌 것 때문에 일사병에 걸린 게 아닐까?'라고 물었다. 분명 땀 뻘뻘 흘리며 비도 맞고 햇빛도 맞으며 힘들게 구경했었다. 그래도 재미있게 박람회 관람을 마쳤고, 맛있는 고기도 뜯으며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나는 행복했었다.


의문이 생겼다. 이대로 즐거웠던 기억들이 기어코 악몽으로 변하는 걸까? 나는 아빠가 사오신 단팥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상심에 빠졌다. '왜지? 나 어제 괜찮았는데. 나는 정말 신났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기뻤는 데, 내 몸은 아니었던 걸까? 난 분명 행복했었는데...' 빵을 먹으며 혈색이 돌아온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본 엄마가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시우가 큰일 난 줄 알았다.”



웃음.jpg



나도 살픗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내가 죽는 줄 알았어.”





9/11


오늘 새벽 아침 1시

엄마한테

“괜찮니?”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내가 부탁해서 말씀하신거지만

눈물이 났다


위로 받고 싶었다


미치도록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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