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희망을 모르고.

: 침과 뜸으로 치료받았던 경험

by 오뉴월의 뉸슬


가 태어나기 이전인 1999년도에 어머니께서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하셨다. 몸에 좋다는 한약을 지어먹어기도 하셨고, 여러 병원을 돌기도 하셨다. 그 근심을 외숙모께서 알아치리시고 어느 한 침술원을 추천하셔서 찾으셨다. 엄마는 그곳에서 침과 뜸을 맞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생겼다고 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그 효능을 절대적으로 믿고 '내 병이 낫지 않을 까?' 고대하며 나를 데리고 전라남도 나주를 찾았다.





우리 가족은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광주역에서 내렸다. 광주역에 도착했다는 기차 안내 음이 기대를 더욱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택시를 타고 구당 침술원에 가는 내내 기차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반대편 도로에서는 제설차가 거침없이 흰 눈을 쓸고 지나간다. 검은 아스팔트 도로를 뺀 나머지 주변 풍경이 온통 하얗다. 나는 아무도 걷지 않은 깨끗한 눈 위에 어서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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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한참을 달리더니 나지막한 건물 옆에 섰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건물은 마치 눈의 여왕이 한차례 전쟁을 치른 듯 처연한 모습이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 두툼하게 쌓여있는 흰 눈 속에 발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신발을 뚫고 찬기가 들어온다. 푹 하고 꺼지는 눈 알갱이들이 저마다 바삭바삭한 낙엽 밟는 소리를 냈다.



나는 신발 밑의 소복한 흰 결정체에 신경이 온통 빼앗겨 발자국을 찍는 데만 열중했다. 엄마와 아빠는 나와 달리 침술원의 입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셨다. 이윽고 엄마가 출입문을 찾아 우리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넓은 외관을 가진 건물과 달리 안은 비좁았다. 안내 실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몇몇 사람들이 어색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알맞게 찾아온 건지 한 아저씨가 우리를 안으로 안내해주었다.








그가 데려다준 장소는 접수실과 달리 널찍한 내부였다. 하얀 침대를 감싸는 흰 커튼이 병원 응급실처럼 구역별로 놓여있었다. 혼자서 진찰을 받아야 되는 구조로 나는 이내 엄마 아빠와 떨어졌다.



쾌활하신 아주머니가 침대 위에 홀로 앉아있는 나를 훑어보시더니 투박한 손길로 바지를 꺼내 주셨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딱 붙는 청바지를 통바지로 갈아입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최근에 본 저녁 8시 뉴스에서 어떤 의사가 환자를 성추행했다는 사건이 떠올랐다. 오직 나만 있는 이 좁은 공간에서는 누가 와서 은근슬쩍 만져도 아무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싸해졌다.




다 갈아입었냐고 물어보시는 아주머니의 음성이 커튼 뒤에서 들렸다. 나는 희미한 목소리로 입었다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커튼을 열고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가느다란 침이 잔뜩 들어있는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잘그락거리며 소리를 내는 쇠붙이들이 사색을 지어낸다. 톡 하고 살갖을 파고드는 침이 따끔했다.







침을 맞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침이 더 깊숙이 들어갈까 봐 꼼짝없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양쪽 다리를 뻗고 힘을 주어 발등이 위를 향하도록 했다. 몸에 힘이 풀려가는 게 느껴졌으나 종아리 옆면에 박혀있는 침들에 불안했다. 침을 더 놓을 까 봐 불안했지만 다행히 몇 번의 따끔거림에 끝이 났다. 시체 같은 10분이 흐르고 한 아저씨가 들어오셔서 침을 빼주셨다. 침을 놓은 자리가 화끈거렸다.



침을 놓고 몇 분 뒤에 어느 백발노인이 커튼을 치우고 들어왔다. 한쪽에서는 명의, 다른 한쪽에서는 돌팔이의 취급을 받고 있는 그는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이상한 생김새는 아니었다. 마치 신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나를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처럼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셨다. 그는 다리를 몇 번 만져보시더니 검은 유성 사인펜으로 뜸자리를 표시하셨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속으로 안심을 하고 있던 나에게 침을 빼주셨던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그는 검게 그을러진 점들을 보더니 곧 누런 쑥뜸을 꺼내셨다. 쌀 반톨 만한 마른 쑥이 까만 표식의 혈 자리 위에 놓였다. 딸칵하며 뜸에 불이 화르륵 붙었다. 불씨가 뜸에 맞닿아 있는 피부를 한순간에 앗-하며 태운다. 타닥-하며 펜 자국 위에 검은 재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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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은 하나의 붉은 횃불처럼 살을 불태우고 꼬집는다. 나는 이를 꽉 깨물며 고통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는 한 번도 아픈 소리를 하지 않는 나를 경탄하며 칭찬하셨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엄마와 나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에 젖었다. 엄마의 가방 속에는 침술원에서 받아온 다량의 쑥뜸과 뜸 기구가 들어있다. 지퍼 안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로운 쑥 향이 피로를 슬그머니 누른다. 엄마와 나는 서로 머리를 기댄 채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눈은 녹고 이제 곧 봄이 온다.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기대감과 편안함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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