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이른 오후, 난 독립 출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강남구에서 은평구까지 이동했다. '독립출판 강의를 들으면 책도 낼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쓴거라고는 짜투리 일기밖에 없었던 내가 을 생각하며 신청 버튼을 눌렀다. 지도를 찾아보니, 꽤나 복잡한 위치에 있는 것 같아 길 찾기가 심히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난 '될 되로 되겠지.' 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 오로지 나이, 18살이라는 '학생' 신분이었다. "고등학생이 공부를 안하고 왜 이런 걸 듣지?"라는 말을 들을까봐 지레 겁을 먹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열정을 막기 어려웠다.
'그런 건 도착해서 생각하는 걸로.'
엄마가 잠시 외출을 하셔서 오혜 책방에 나를 못 데려다주는 대신 사촌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갔다. 사촌 언니의 도움을 받아 어리게 보이지 않게 화장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1시간 반 정도 지나 잠에서 깨어나니 택시 기사님께서 여기인 것 같다며 차를 세우셨다. 언니와 나는 창문 밖을 두리번대며 책방을 찾다가 뒤차가 왜 안 가냐고 빵빵거리는 탓에 서둘러 택시에서 내렸다. 가랑비가 보슬보슬 콧망울을 적셨다. 손등으로 빗방울을 막다 운 좋게 '독립서점’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찾아 언니와 급히 헤어지고 안으로 들어섰다.
경적이 울리는 바깥과 달리 책방 안은 고요했다. 약 1미터 높이의 책꽂이를 지나자 먼저 수업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여성 3분과 남성 1분이 간이 의자에 빙 둘러앉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늦었나 봐, 어떻게.’ 남성분은 관심이 별로 없는 듯 계속해서 못다 한 말들을 이어나갔다. 말씀하시는 걸 열심히 듣다 너그러워진 분위기에 나는 안을 넌지시 둘러보았다.
‘설마 내가 있는 곳까지가 끝인가?’
내 방보다 작은 책방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우면서 신기로웠다. 독립서점은 천장 끝까지 책장에 뒤덮여 있으며 빼곡히 독립출판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작가님이자 서점 주인의 사적 공간도 따로 있었는데, 안쪽으로 책방이 더 이어져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책방은 내가 있었던 곳이 정말 다였다.
잠시 후, 여성 한분과 남성 한 분이 더 들어온 뒤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할지 서로 눈치를 보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성분이 먼저 말을 꺼냈다. 특이하게도 옆에 착석하신 친구분과 함께 오셨다고 했다. 발표를 하다 나이를 밝히셨데 다른 사람들도 뒤이어 따라 말하는 탓에 졸지에 나도 말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내 옆자리에 앉으신 두 여성분은 대학생(20대)으로 보이셨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이가 어리신데도 출판의 꿈을 가지고 온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다채로운 미래에 살짝 질투도 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화장을 한다고 했는데도 상판은 미성년자처럼 보이는지 모두들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곽시우라고 하고, 18살이고요,” 흐에에~! 다들 몹시 놀란 눈치였다. ‘하하, 그렇죠? 원래 지금쯤이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될 때인데.’
“대단하다~”
‘어라?’
“저렇게 어린데도 와서 듣는 거야?
나는 저 나이 때 뭐했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흠칫했다. '이게 아닌데...' 내 연령이 누군가에겐 부러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묘했다.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되고, 아프다고 구구절절 사연을 말하지 않아도 돼서 참 좋았다. 이제 와서 깨달은 거지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안 하는 것도 바로 말의 기술이었다. 그 후에도 사람들이 나서서 꼬치꼬치 캐물을 까 봐 마음 졸였지만, 아무도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내 어린 나이만 놀라워했다. 이렇게만 알아주면 마음껏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촌 언니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언가 배우는 게 있으니까 마음의 양식이 쌓이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는 것보다 조금씩 기어 나와서 세상 구경을 해야겠다고 각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