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소에 견적을 넣기 전에
최종적으로 책 사양을 결정해야 했다.
첫 책이라서 내가 원하는 건 전부 하고 싶었다.
인쇄비가 비싸지더라도 예쁘고 고급진 느낌이
났으면 좋겠어서 이리저리 발품을 팔고 다녔다.
내지는 종이의 질감과 냄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제본으로 뽑은 책은 미색 80이었는데
종이가 매우 얇고 흐물거렸다.
그래서 책 두께가 두꺼워져도
무게감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양한 종이를 볼 수 있는
뛰는 사람들과 두산 종이에 갔다.
뛰는 사람들은 책 내지를 찾기에 적합했다.
두산 종이에는 고급 수입지들이 많았다.
알록달록 나열돼있는 종이들을 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내지 종이들을 만져봤는데 오히려 더 모르겠어서
직원 분에게 내가 가져간 책들의 종이를 물어봤다.
수입지, 미색, 재생지 등 답이 다양해서
혼란스러움은 점점 커져갔다.
그날 딱 내지를 정하려고 했는데 더 어려워졌다.
우선 미색 모조 90
문켄프린트그림 70
그린라이트 70으로 좁혔는데,
인쇄소에 찾아보니 인쇄소에 없는
종이를 들여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린라이트로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린라이트로 작업하는 인쇄소는 많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린라이트는 시간이 지나면 종이가 누렇게 변한다.
그 변함 정도가 심해서 고민이 되었다.
엄마 또한 그린라이트가 예쁘지 않다고 했다.
뛰는 사람들을 두세 번 방문한 끝에,
인쇄소에도 있고 종이 질감도 있는
클라우드로 결정했다.
표지는 아르떼와 랑데뷰 중에
많이들 선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둘 다 울퉁불퉁한 질감이기 때문에
유광 코팅을 하는 책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인쇄소에 가서 아르떼로 작업한 책을 봤는데,
표지보다는 편지지?의 느낌이 강했다.
반들반들한 표지를 원한다면 스노우가 적합했다.
그리고 책날개를 만들 거면
표지가 너무 두꺼워서도 안되었다.
다행히 인쇄소에 가져간 책이 스노우지 같다고 해서 스노우지로 결정했다.
처음 뽑은 가제본 표지의 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두 번째 책은 표지를 쨍하게 보정했는데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화면에서 보이는 것과
색이 다르게 뽑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책 제목도 얇게 작가 이름도 작게 만들었다.
특히 소제목의 글자가 큰 것 같아 바꿨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저작권을 표시하는 부분도
작게 바꿨다.
가제본을 뽑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수정하는 게 좋다.
두 번째 책을 받아보니
제목이 너무 얄쌍해져서 다시 바꿨다.
소제목 글씨의 크기는 딱 알맞았다.
다른 인디고 인쇄소에서 그린라이트로
세 번째 가제본을 뽑고 싶었는데 금액이 초과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린라이트의 누런 느낌이
내 책과는 안 어울릴 것 같았다.
규격과 디자인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고,
인쇄소에 가면 끝이 난다.
책이 완성되어가는 듯해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