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가 아니야

공황장애

by 오뉴월의 뉸슬

차가운 공기가 서리는 새벽 2시 밤이었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겨드랑이 사이에 체온계를 집어넣었다. 체온계는 삐-소리와 함께 38.3 숫자를 드러냈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체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2시간 동안 해열제도 먹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열을 떨어뜨릴 방안을 동원했지만, 체온계는 38도를 안밖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병원에 가자." 엄마가 말했다. 나는 체온계가 미심쩍었지만, 열이 37도로 안 떨어지면 병원에 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군말 없이 엄마 아빠를 따라나섰다.


순순히 차를 탄 나는 아파트에서 멀어지면서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허겁지겁 체온계를 꺼내 열을 재보았다. '37' 내가 그토록 원하던 숫자가 떴다. “엄마 떨어졌어.” 내가 체온계를 보여주며 말하자, 엄마는 “그래도 이왕 출발한 거 갔다 오자.”라고 말씀하셨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다급해진 마음에 나는 다시 온도를 쟀다. 숫자는 37과 36.9를 왔다 갔다 보여줬다. 추운 공간에 몸이 노출이 되다 보니 열이 급속도로 떨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가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데...’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엄마를 졸랐다. “이제라도 빨리 돌아가자, 응?”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야기해도 설득이 되지 않자, 나는 얼굴을 돌려 캄캄한 창밖만 주시했다. 차 안은 금세 정적에 휩싸이면서 한기가 돌았다. 병원에 다다르자 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서 빨라졌다. 나는 응급실에서 벌어질 헤프닝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열도 없는데 왜 왔냐고 말하면 어떡하지?’ 귀찮아하는 간호사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유모를 공포가 생기면서 숨이 점점 가빠와졌다. 나는 이를 제지하러 손톱으로 손끝을 찔렀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 도착해 차 문을 열고 심호흡을 해도 가슴이 여전히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올 거 같은 불이 꺼져있는 병원 내부는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다. ‘후다닥 검사를 받고 집에 빨리 돌아가자. 괜찮아. 괜찮아질꺼야.’ 나는 주먹으로 심장 부근을 때리며 응급실로 들어갔다.






“담당 선생님께서 열이 38도 이상 되면 응급실로 오라고 하셨거든요.” 엄마는 응급실 당직 의사에게 부연설명을 했다. 나는 죄를 지은 것처럼 의사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의사는 내가 저녁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체온계로 다시 열을 재보셨다. 소리가 들리면서 숫자가 떴다. '36.7' 정상범위였다. ‘봐봐, 안 와도 됐었다니까.’ 다음에 올 말이 두려웠던 나는 마스크로 시야를 가렸다. “이 정도는 괜찮은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하고 갈게요.” 의사 선생님이 엄마를 보며 얘기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듯 한 의사 선생님의 모습에 가슴을 쓰려내렸다. ‘짜증 내실 것 같았는데 아니네. 다행이다.


응급실 깊숙이 간호사 네다섯명과 응급실을 찾아온 사람들이 보였다. 수액을 맞으며 피곤한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긴 의자에 앉아있었다. <인셉션> 영화 속 장면처럼 약을 달고 잠에 취해 해롱거리는 것 같은 모습이 기이해 보였다. 밤늦게까지 깨어있어 피로해 보이는 간호사는 피를 뽑고, 엑스레이 촬영과 소변 채취를 한 뒤 다시 오라고 말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얼른 끝내고 가자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채혈실로 들어갔다. 주삿바늘은 엉망진창인 내 기분을 모르는 지 계속 살을 찔러댔다. '이 상태로 어떻게 소변을 채취하고, 엑스레이를 찍어?'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을 타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렀다.





검사를 다 마친 후, 나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던 눈물이 메말라갈 쯤, 옆에서 소란이 났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이게 뉴스에서만 보던 현장인가?' 만화 전개 같이 뜬금없은 소동에 나는 미동도 없이 할아버지를 지켜봤다. 간호사들은 옆에서 가셔야 된다고 말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였다. 할아버지는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팔에 고통도 잊혀버릴 만큼 흥미진진했다. 말싸움을 계속하다 장정 두명이 할아버지의 짐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알겠다고 하면서 제 발로 나갔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지금까지 느껴던 감정이 민폐가 될 것을 우려한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에게 민폐가 될까봐였고, 밖에 나가서 시선을 걱정하며 살았던게 다 내가 민폐로 여겨질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든 세상 만사 이치가 단번에 설명되었다. 나는 민폐 덩어리가 아니었다. '저런 사람이 바로 민폐지.' 민폐가 되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나는 전혀 민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고개를 숙으리고 위축되어 다녔던 지난 날의 나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 때의 너는 절대로 민폐가 아니었어. 너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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