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된다는 것...

by 오뉴월의 뉸슬


스무살이 되면 난 내가 '엄청난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노벨문학상을 받거나 하버드대를 들어가는(누구나 어렸을 적엔 한번쯤 꾸어봤을) 그런 사람은 아니더라도, 출판한 책 한 권 정도는 가지고 있는 번듯한 작가가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지 2~3년이 지났는데도 완성된 초본이 없었다. 30꼭지 정도의 글을 썼지만, 퇴고를 하기를 귀찮아하고 초고 쓰는 일을 미루다보니 어느새 책 제목은 <열여덟살이 뭘 알아?> 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스무살이 되었다>로 바뀌었다. 2년이 훌쩍 사라진 셈이었다.






나의 십대 시절은 암흑 그 자체였다. 난치병 진단을 받으면서 내 삶은 급속도로 황폐해져갔다. 언제 찾아 올지 모르는 호흡곤란과 불안 증세로 매일 힘겨운 줄다리기를 했다. 온종일 나의 죽음과 고통이 머릿속에서 되돌리기를 누르고 있었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잠을 잘 때에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세계가 초침 소리에 묻히는 자정이 되어도 나는 편히 잠들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1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나요?' 라고 물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겠노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가혹한 운명의 수레를 끊어내고 지옥이든 천국이든 가 있지 않을까?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연도를 쓰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앞자리 수는 적응되지 않았다. "스무 살, 스물."이라고 발음하면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스무 살이라니.' 이제는 여엿이 술을 마시고, 클럽에 가고, 19금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다른 것보다 나는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시리즈와 책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다. 스무살이 되면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외국 영화에 나오는 독한 술을 바에서 '멋있게' 마시는 거였는데, 아직 이루진 못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스무살이 된 기념으로 마신 와인은 쓰고 맛이 없었다.


photo-1467810563316-b5476525c0f9.jpg?type=w966 © goian, 출처 Unsplash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을 줄 알았던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지금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고등학생 때의 나는 책을 내지 않으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왜냐면 스무살이 사회적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출판하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이유가 출간 하나였는데, 이걸 해내지 못한다면 내가 힘겹게 버틴 날들은 불평 불만을 흐트러 놓은 일기장이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한 주동안 예전 물건들을 꺼내보고, 정리하고, 버리면서 내 2015부터 2018년도의 생이 그렇게 쓰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5년도 애써 힘내라며 화이팅으로 도배되었던 일기장의 한 페이지와, 2016년도 수채화 물감으로 가시 돋힌 꽃을 그렸던 날. 2017년도 카메라로 아크릴화를 담았던 날과 2018년도에 글쓰기를 배우겠다며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난 날. 그 모든 날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각자 떼어서 보면 의미없는 돌덩이들일 뿐데, 모아서 보니 보물상자가 따로 없었다. 정말 웃겼다. 내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시간조차 끊임없이 무언가를 남겼다. 최선은 아니고, 노력이란 말은 부족할 지 몰라도 난 지금도 이렇게 무지개 구름 안에 살고 있었다.


내가 참고 견딘 기록을 보니 나의 10대가 지옥이었다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힘들게 견딘 날들이 부정적인 단어로 정의되는 것이 그 시절의 나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도 소중한 존재이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건강이 조금 나아진 지금 모든 걸 묶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그 시절의 나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과거처럼 살아보라고 하면 절대 못할텐데, 그때의 나는 어떻게 버텼을까 대견했다. 인생 최악의 시기를 지낸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내 자신이 멋져 보였고 그 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고맙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이제 괜찮졌어.'


스무살이 되면 내 인생이 멋지게 바뀌어 있지 않을까 한번쯤은 다들 기대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 정도는 품어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과연 스무살을 찬란하게 보낼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자그만한 기대가 피어났다. '나도 어쩌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남들처럼.' 이제야 겨우 수면 위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서 회사를 다니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지는 못해도 스무살 같이 열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심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나는 내 병이 더 나빠지지 않기만 소원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자그만한 소원이 있다면, 올해는 글을 더 체계적으로 썼으면 좋겠다. 그냥 그것 뿐이다.






2019,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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