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학원에 가서 선행학습을 한다. 활기차게 자신의 미래를 꿈꿀 시간에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 지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공부, 공부만이 학생의 본분이라고 배운다. 사람들은 공부하는 게 재밌지 않다는 걸 알면서 계속 좋아하라고 강요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피아노 치기나 책 읽기 같은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티비 보며 웃고 게임을 하고,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인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나는 좋아하고 잘하는 걸 과목으로 구분했다. 공부를 많이 안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국어나 수학 과목은 잘하는 것, 성적은 잘 안 나오지만 내가 좋아하는 과학 과목으로 구분 지어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나누었다. 하지만 투병생활을 하면서 두 가지가 다 사라졌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과를 결정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정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잘하면서 동시에 좋아하는 것을 꿈으로 삼으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야, 과목으로 나누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아니 애초에 나는 뭘 잘할까?'
무얼 좋아한다거나 잘한다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잘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잘 쓴다는 기준은 애초에 무엇일까? 베스트셀러가 된 책? 문학상을 수상한 글?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기준은뭘까? 나는 정말 글 쓰는 걸 좋아할까? 창작은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 날 것의 이야기들을 리폼해서 새 드레스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살을 깎아내리고 피를 쥐여짜 천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서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야한다. 나는 이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좋아했었나? '글 쓰기 싫어'를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잘하는 것들 GOOD
고통, 눈물 참기
하루만에 책 읽기
울면서도 억지로 웃을 수 있음
죽을 것 같은 감정 억누르기
잡초같은 생명력
좋아하는 것들 LIKE
악보 없이 피아노 마음대로 치기
물감으로 손 가는 대로 그리기
필 받아서 다이어리 꾸미하기
책, 스티커, 미술용품 수집
설명서 대로 레고 만들지 않기
엄마 따라 회사 가서 점심 먹기
내가 쓴 글 반응 보기
나는 내가 잘하는 것들의 목록과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씩 써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고, 잘하는 행동도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것들은 대부분 병이 나고 생긴 것들이었다. 좋아하는 것들도 전부 앉아서 해야하는 일들이었다. 차트를 만들어 놓고 보니 희귀병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 고통을 인내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라니 내 상처가 생각보다 깊다는 걸 깨달았다. 참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마냥 머릿속으로만 떠올렸을 때는 내가 잘하는 것들이나 좋아하는 것들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씩 차근차근 적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잘하고 좋아하는 게 많았다. 분명 나는 학생시절보다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앞으로는 이 아젠다들을 천천히 늘려가면 좋겠다.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보다 외부활동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