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핸드폰 게임 아이디를 복구하기 위해 패스워드를 찾아서 입력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눌러도 페이스북에 접속할 수 없었다. 나는 로그인 창을 새로고침하다 답답한 나머지 아이디를 새로 만들었다. 성별과 이름 없이 계정을 생성했는데도, 페이스북은 어떻게 알았는지 예전 동창들의 프로필을 보여줬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나는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의 프로필을 클릭해 들어가봤다. 프로필 상단에는 보란듯이 대학교 이름이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영어로 적힌 대학교 명칭은 누가봐도 폼이 났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거의 다 대학에 들어갔는 데 나는 그동안 뭐한 거지?' 프로필에 드러나는 대학교가 부러웠던 나는 내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사용하는 SNS 계정은 인스타그램 밖에 없다. 처음에는 음식 사진이나 내가 그린 그림을 올리는 용도로 썼다. 그런데 점점 좋아요를 받으려고 애쓰고 좋아요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처량해졌다. 나는 한장의 사진을 올리는데도, 해시태그를 산처럼 쓰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했다. #일상스타그램 이나 #셀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가끔씩 눌러보면 내 삶과 대비되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비교됐다. 사진 속 그들은 하나같이 다 멋있고 행복해 보였다. 나만 혼자 고통속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려고 인스타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음울하게 소모되는 감정이 거추장스러웠던 나는 핸드폰에서 인스타그램 앱을 지워버렸다.
지난 5년동안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책을 서둘러 출판하려고 했다. 지금 와서 다시 보니 퇴고가 제대로 되지 않은 글인데 나는 일단 무작정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 10대 인생에 책이 없으면 나는 내세울 게 없었기 때문에 출판에 목을 매달았다. 스무 살이 되면 사람들은 병으로 인한 내 생활보다 대학을 가지 않은 것에 더 초점을 둘것 같았다. 나는 대학을 가지 않은 아이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한때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기에 반드시 스무 살 전에 책을 내야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그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한번쯤은 나도 남들을 앞서고 싶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대학에 입학했다며 우쭐될 때 나도 책을 냈다며 으스대고 싶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싶었다.
스무 살이 된 나는 책도 대학도 어느 하나 이루지 못했다. 새로운 20대가 시작이 됐는데 나 혼자 19살에 멈춘 느낌이 들었다. 스무 살만 되면 대학에도 가고 책도 낼 줄 았았는데 크나 큰 오산이었다. 대부분 다 가는 대학을 가지 못한 나는 '20살'이 되지 못했다. 스물은 나에게 성인의 신분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어른이 되었어도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5년 내내 책을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책'이라는 결과물이 없었다. 출판을 하지 못한 나는 10대의 삶을 '실패'한 것이다. 내가 남들에 비해서 뒤쳐진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대학 입학처럼 확실하게 이룬 성과가 없었다.
엄마는 나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병이 낫는게 우선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어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성인이라면 응당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어야 했고, 용돈도 스스로 벌 수 있어야했다. 알바를 직접 뛸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용돈을 충당해야 했다. 언제까지나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으며 살 수는 없다. 최소한 약 값이나 병원 진료 비라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세상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면 좋겠지만 심장은 구슬프게 설움을 쏟아냈다. '내가 통증으로 고통받는 시간에 친구들은 스팩을 쌓고 있겠지. 간단히 집 안 청소하는 것도 힘든 내가 과연 친구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나 혼자 이 곳에서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항상 열심히 달리고 있고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인생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 같은데, 나만 낭비하는 것 같았다. 심란해진 나는 지식의 백과사전 인체편을 뒤져 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은 사실 늙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세포가 죽고 다시 만들어진다고 한다. 몸 안의 세포는 종류별로 수명이 다르다. 병원체와 싸우는 백혈구는 하루 미만이고, 피부 세포는 30일, 적혈구는 최대 120일쯤 살다가 간이나 비장에서 대식세포라는 백혈구에 삼켜진다.
세포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파괴되면서 변하는 것처럼 우리도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 자크 타상의 책 <나무처럼 생각하기>에서는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은 나무도 확장되고 새로 태어나면서 계절마다 모습을 바꾼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날씨에 따라 새로운 옷을 꺼내입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보는 주름진 껍질과 때때로 축 늘어진 나뭇가지는 결코 과거와 똑같은 모습이 아니다.' 나무는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 활발하게 변하고 있다. 한해 한해 성장하는 나무처럼, 조용히 들여다보면 나의 인생도 자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