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세번은 꼭 집 밖에 나가려고 노력했다. 나갈 일이 없으면 동네 책방에라도 가려고 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일어나곤 했던 나는 아침 8시에 깨어나서 부모님과 함께 수퍼마켓에도 가고 간혹 외식도 하러 갔다. 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고, 가끔씩 엄마와 함께 요가 센터에도 나갔다. 고양이 자세도 제대로 못했던 처음과 달리 아직도 힘은 들지만 1시간 요가수업을 따라 할 수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체력도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오랫 동안 긴장했던 근육이 조금씩 이완되기 시작했다. 가벼운 산책 정도는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못하게 되고 거의 집안에서만 생활을 한 탓인지 내 몸은 힘들었던 때로 돌아갔다. 어쩌다 잠깐 밖에 나갔다 오기만 하면 힘들어서 드러눕기 바빴고, 이 삼 일이 지나서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파트 입구 상가에 있는 책방에서 우리 집까지 이 삼백미터를 걸어오기도 힘이 들었다. 앉았다 일어서거나, 물건을 집으려 몸을 숙이면 심장이 전보다 빠르게 뛰었다. 요가 학원에서 쉽게 따라했던 동작들은 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안 좋아진거 아니야?' 불안해진 나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대 병원에 갔지만 의사 선생님은 검사결과가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나는 민감하게 반응한거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몸은 진실만을 얘기했다고 말해주는 듯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생활 패턴이 완전히 뒤바뀌면서 체력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가 센터에도 나가고 재활의학과에서 도수치료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어 아직 못 나가고 있다. 한 번 바뀌어버린 습관은 다시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수면 위로 올라왔는데.' 낮잠을 자고 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아침까지 깨어있는 내 습관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체력이 약해지니 밖에 나가지 않게 되고, 더 체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대로 나빠지는 걸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던 나는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예전보다는 나아진 일상이었지만 다시 나빠질까봐 불안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빠진 게 아니랬는데, 그런데 왜 나는 힘이 들까?' 인간은 양가 감정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 사랑을 생각하며 이별을 생각하고, 생을 생각하면서 죽음을 생각한다고 한다. 몸이 조금 좋아지니 자연스레 몸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꾸었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복에 겨운 것이라면서 이런 고민조차 나에게 부럽다고 말하겠지.'
죽을 수 있다는 게 두려웠는데 나빠질까봐 불안해하다니, 내 삶이 많이 나아지긴 했나보다. 오히려 더 확신이 드는건 기분 탓이었을까? '만약 병이 악화되면 다시 좋아지게 만들면 되지.' 몇 번 나가지 않으면 따라하기 힘들어지는 요가 동작처럼 일상생활도 꾸준히 노력해야 되는것 같다. '편안하게 살고 싶지만 몸이 나빠지기는 싫어.'라는 말은 왠지 집에서 놀고 싶지만 돈은 많이 벌고 싶어와 비슷한 말 같다. 지난 5년 동안 수없이 반복된 나아짐과 나빠짐 사이에서 얻은 교훈이다. 건강도, 일상도, 그 무엇도 나는 편히 얻을 수 없는 팔자인가 보다.
불이 완전히 꺼진 방에서 침대에 눕다 누가 나를 죽일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주변은 온통 노란 벽지와 가구들 뿐인데 누군가 내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내가 안 좋아지면 어떡해?" 라고 물었다. 엄마는 "그럴리 없어.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라며 나를 껴안고 위로해줬다. 나는 엄마의 단호한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침대에 편히 누울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않을 것이다. 절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되뇌이며 이불 속에서 뒤척였다.
지금의 정적이 너무 달콤해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