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
'좋아'하는 걸 소리 내 말해보니

틈글

by 코고아모

극 내향형 인간인 나는 '아무거나 '인간이었다.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내가 정말 내성적인 사람이구나,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한 이래 단체생활에서 늘 내 의견은 '아무거나'였다. 예를 들면, 회식을 한다거나 연말에 단체로 선물을 준다거나, 밥을 먹으러 갈 때 메뉴를 고를 때나 등등 단체란 울타리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늘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땐 그게 내 취향을 죽이는 건 줄 몰랐지. 그렇다고 그게 특별히 싫은 건 또 아니다, 특별히 가리는 게 없고, 특별히 까탈스럽지 않은 성격 덕을 봤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받고, 아무거나 해도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특별히 좋았다는 건 아니다. 그냥 무던히 있는 듯 없는 듯 도드라지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좋다, 싫다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 저주라도 받는 마냥, 그 말을 거의 뱉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 콕 집어 시기를 말할 수 없지만, 서른다섯 살 넘으면서부터? 놀랍다 -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좋다' '싫다' 말해볼까. 어떠한 동기도 없었고, 그냥 안 해보던 거 해볼까 했던 때였다. 그때 나는 아마 일을 하면서 성격이 좀 바뀌기도 했고, 또 뭔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던 때였던 것 같다. 맞아,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했었다. - 옆길로 샜지만 다시 돌아와서 - 여하튼 그래서 정말 나로서는 큰 결심(?)을 한 거였다. '싫다' '좋다' 말하기! 매 순간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말해보자 싶었다.


시작은 메뉴 고르기. 회사에서 메뉴를 고르는데, "카레 먹을래?"라고 하길래 "싫어요"라고 했다. - 내가 싫어요라고 했다 - 심장이 쿵쿵 뛰고 내 눈은 그 말을 한 선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슬쩍 보고 혹시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닐까, 선배는 카레를 먹고 싶은데 내가 칼같이 거절한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선배의 입이 옴짝달싹하기까지 그 찰나의 순간에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더라. 뭐, 별일 없었다. 선배는 "그래? 그럼 뭐 먹을래?"라고 해서 "돈가스 먹고 싶어요"답했다. 그날 점심은 선배가 돈가스가 싫다고 해서 타이 음식을 먹었다. 쌀국수를 먹으며 가슴에 뭔가가 뜨겁게 내려가는 걸 느꼈다. 뜨거운 국물 때문일까. 조금 덩어리가 진 것이 내려간 걸로 느꼈기에, 그날 '겁'의 일부분이 쑥 내려갔다고 생각한다. 싫어요라고 말해도 되는구나, 큰일이 나지 않는구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구나 '안심'했다. 소심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민망한, 서른 해가 넘게 갖고 있던 '겁'의 한 귀퉁이가 그날 쌀국수 국물과 함께 떠내려갔다. 그날 이후로 '싫어요'란 말을 하는 게 겁나지 않는다.


그 이후 그럼 '싫어요'라는 말을 잘하냐면, 또 그렇진 않다. 나는 '싫어요' 대신 '좋아요'라는 말을 한다. 예를 들면 "구구콘 먹을래요?"라고 하면 "그거보단 메로나가 좋아요" 이런 식인 거지. 싫어요라는 말을 뗐지만, 굳이 쓰지 않는 건 상대방을 위해서다. 거절의 의미를 담은 말이라도 싫어요,라는 단어보다는 '좋아요'라는 단어를 듣는 게 조금 더 기분이 낫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랄까. 단어가 사람에게 닿았을 때 그 단어가 생각에 스며들 때 잔잔한 감정의 파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싫어요'라고 들으면 잠깐이라도 벽이 생기고 부정적인 감정이 확 퍼졌다가 사라지는 걸 느껴보니 그냥 같은 말이라도 기운(?)이라도 좋은 단어를 써보자 싶었다. 그리고 이건 나 때문이기도 했다. 단순히 싫어하는 거 말고 '좋아하는 것'을 말해보자 싶었던 거다. 조금 더 확실하게 감정을 말해보자는 생각이 든 거지. 그래서 천천히 '이 노래가 좋아요" "이 커피가 좋아요" 좋아요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의외로 좋은 거다. "저는 OO이 좋아요"라고 말하면 극도로 날 감추던 내성적인 내 성격을 이긴 것 같은 묘한 쾌감도 있다. 또 상대방이 날 보는 표정이 달라지는 게 재밌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말하면 경계가 살짝 풀어지고 호기심을 가질 때도 있다. 물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거라면 그 경계는 더 풀어지기도 하고. 내가 타인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는 틈을 만드는 말이 "좋아요"였다. 무엇보다 내가 말하면서도 날 알아가는 느낌이 좋다. 나는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거다. '아무거나' 괜찮았던 사람은 사실은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거지. 그러다가 괜히 웃음이 날 때도 있다. '너 이거 좋아하는 애였어?' 하면서. 신기하고 기특한 거다. 그래서 요즘 하루에 한 번씩 일부러 '저는 이게 좋아요'라고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해보니 기분이 좋더라. 기분이 좋으니 웃고, 웃음으로 일하느라 경직된 하루를 부수고 나면 일할 에너지도 생기는 것 같고. 여러모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다르다곤 하던데,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내 취향을 말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실제로 큰일이 나지도 않는데 그렇게 말했을 때 분위에 미세한 균열이라고 생길까 봐 그게 싫기도 하고. 그런데 작은 부분에서 내 취향을 드러내는 게 생각보다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 속으로 말고 밖으로. 그래서 앞으로도 '좋아요'라는 말을 많이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만 줄임.


아! 노란색 좋아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