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일을 하게 됐어?

왜 방작을 하게 됐냐면

by 코고아모

"넌 왜 이 일을 하게 됐어?"

이런 질문 한번쯤 받아본 기억 있지 않나요? 첫 직장, 첫 일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나요?




정말 숱하게 들은 질문이다. 나를 포함한 방송작가들은 새로운 작가를 만나면 꼭 궁금해한다. '대체 저 작가는 왜 방송작가를 하게 됐을까...' 묻는 작가들의 눈엔, 특이하다면 특이한 직군인 이 방송작가의 세계로 어떻게 하다가, 도대체 왜 들어오게 됐냐 (거기에 왜 아직도 하고 있냐)는 호기심이 이글이글하다. 내가 선배, 후배에게 물을 때도 그랬겠지?


"왜 방송작가를 하게 됐어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보통 뭉뚱그려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다 보니까 하게 됐어요. 하다 보니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계속하게 됐네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현재는 내 대답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나는 방송작가를 하고 있는가, 그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

2009년, 부산으로 가보자. 당시 대학교 3학년 1학기, 영상 문학을 전공 중이었던 나는 어느 날 한 교수님의 부름을 받았다. 강의실에서 지척에 있는 교수실로 가는 데 심장이 왜 그렇게 쿵쿵 쿵쿵 뛰었는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교수님과의 독대는 무서웠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교수님을 만났을 때, 교수님께서 말했다.


'KNN에 인턴 자리가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땐 그게 길고 험난한 방송작가 인생의 초입이란 걸 꿈에도 몰랐다. 늘 '꼭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야지' 마음을 먹긴 했지만 내가 생각한 글 쓰는 직업 중에 '방송작가'는 한 5위? 6위? 정도였다. 영상과 관련한 글쓰기를 배우면서 시나리오 작가가 1번 꿈이었고, 2번은 영화 홍보, 3번은 광고.... 등등 여하튼 방송에 큰 뜻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방송국 인턴 제의도 그냥 가벼운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경험해서 나쁠 것 없지,라는 아주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 그렇게 부모님께 그 사실을 말하고 부랴부랴 그날 저녁, 홈쇼핑으로 노트북을 하나 샀다. 꼭 있어야 한다고 해서 샀는데 엄청 무겁고 투박했다. 그렇지만 그게 좋았다. 내 첫 노트북, 솔직히 인턴을 하게 된 것보다 새 노트북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그렇게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철없네 생각해 보니까) 부산 연산동에 있는 KNN으로 향했다.


다들 첫 직장에 들어갈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방송국 입성'의 그 순간 내 기분은 어땠었나? 돌이켜보면 설렘은 없었다. 그저 잔뜩 긴장했고 잔뜩 움츠러들었다. 극 내향형이다 보니 새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 자체가 내겐 미션이었다. 정말 다행인 건, 나보다 한 달 먼저 일하고 있었던 동기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하다가 못 하겠으면 그냥 나오면 된다, 돌아갈 학교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최소한의 도망칠 곳을 마련해 두고 동기를 기댈 곳으로 (마음속에) 세워둔 다음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속한 팀은 특집 자연 다큐를 만들기 위해 결성된 팀이었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10부작 자연 다큐. 당시 차장급 PD님과 다른 두 PD님 그리고 정말 까마득한 작가님 두 분과 인사를 나눴다. 세 분은 너무나... 커 보였다. 너무너무너무 어려운 존재,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분들 사이에서 대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앞이 깜깜했다. 방송밥만 십 몇 년 씩 드신 분들 앞에서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고. 물론 겉으로는 아주 괜찮은 척했지만 난 거의 자아를 빼놓고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팀의 막내 PD님 옆으로 자리를 배정받고 앉아서 뭘 했더라? 잘 기억도 안 난다. 그저 노트북을 연결해서 찾으라는 거 찾았다. 산이며 강이며 자연만 주야장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방송국 간부님들이 제작국에 놀러 오시면 인사하고, 또 노트북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처음 속해본 '사무실'이라는 곳. 고개를 들어보면, 질서 정연하게 놓인 책상들이 보인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작가, PD들은 전화를 하거나 열심히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다. 사무실 구석엔 새까맣고 커다란 1대 1 편집기가 몇 대 있다. 거기서 몇몇 작가님들이 찍어온 영상을 보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엔 네 개의 책상을 붙여뒀는데 거긴 조연출 자리였다. 조연출들은 계속 뭔가를 들고 들락날락거렸다. 대체 저게 저기 왜 있지? 하는 물건 - 예를 들어 이불, 공, 등등 - 조연출 자리에 가득 놓여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촬영 소품이었다는 것...) 국장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때 나에게 사무실은 한없이 무겁고 고요하고 어렵기만 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단 며칠 만에 그 고요는 와장창 깨졌다. (방송국이 절대 조용할 리 없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방송국 사람들의 실체를 마주했다. 마냥 수줍던 나는 하루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새로운 나'를 마주한다. 당장 때려치울까? 자괴감에 몸부림쳤다가 통장을 보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탈출 욕구가 불쑥불쑥 치솟았던 순간들이 닥친다. 그런데 묘하게 그러면서 이 직업에 점점 빠졌다. 나는 왜 그곳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쩌다가 나는 다큐팀 자료조사로 방송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엄청난 꿈을 가지고 방송작가를 하기도 하던데, 이렇게 태어나는 방송작가도 더러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어쩌다'의 순간이 여러모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엄청난 순간이었다는 것. 왜 아니겠는가, 내 인생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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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 다큐팀 막내는 뭘 할까? 그리고 첫 월급은 막내를 춤추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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