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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Oct 23. 2022

왜 친구를 입양해야 했을까요

친구가 죽었다. 가족 같던 친구가 죽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족 같던 친구는 가족이 될 수 없다.  망자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망자의 것이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조차 망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때론 그 여정은 인간이 만든 제도에 의해 굽어진다.


모명상 씨는 친구의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했다. 암에 걸린 친구를 요양병원에 데려가고, 임종을 지킨 것도 모 씨였다. 친구는 자신이 죽은 뒤 물에 뿌려달라고 했다. 약속을 지키는 일은 멀었다.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고, 19일이 지나서야 친구의 유언을 지킬 수 있었다.


2019년 무연고 사망자 중 10% 이상은 가족같이 지내던 이들이 있었다. 제도적으로 묶이지 않았을 뿐 가족 같던 이들이 있었지만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연고로 이들을 보내야 했다. 2020년 보건복지부 지침이 마련돼 이들 역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의료법, 장사 등에 관한 기존 법률과 충돌한다. 고인의 연고자인 배우자, 부모에게 시신 인수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만 최대 14일이 걸린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가족의 개념은 변하고 있다. 결혼을 통해 꾸린 가부장적 핵가족,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개념에 묶이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가족을 상상한다. 고립과 빈곤으로부터 새로운 유대와 관계를 형성하는 일. 그런 가족이 여기에, 저기에 존재한다. 비혼모, 미혼모, 동거 커플,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있다.

통계청

통계청은 2050년이면 1인 가구 비중이 약 4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가족 대신 친구, 애인과 함께 사는 비친족 가구는 지난해 역대 최대로 나타났다.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많은 이들은 혈연, 혼인 관계 외에도 생계/주거를 공유하는 관계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까지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5살 터울의 친구가 친구를 입양했다. 오랜 기간 실질적 가족이었던 두 사람은 동성친구가 제도적으로 묶일 방법은 입양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친구가 엄마가 되면서, 친구가 딸이 되면서 두 사람에게도 제도적 울타리가 생겼다. 딸이 된 친구를 직장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형태는 달라지고 있는데, 국가는 눈을 감고 있다. 몸은 달라지고 있는데, 국가는 여전히 낡은 옷을 들이밀며, 입으라 말한다. 주거, 의료, 돌봄 등 삶의 전 영역에서 국가의 보호는 국가의 정상성을 기준으로 한다. 소득세 인적공제의 경우 호적상 배우자만 가능하며, 주택청약, 특별공급 등도 신혼부부 등을 산정해 지원한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것인가, 국가를 위한 것인가.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한국이 국가 간 입양을 통해 연간 15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난다”


마야 리 랑그바드 <그 여자는 화가 난다>


훈 에르 브르드(Hun er vred). 덴마크어로 화가 난다는 뜻이다. 여자는 왜 화가났을까.


그녀는 입양과 제국주의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국가 간 힘의 차이가 어떻게 입양 산업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적한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 국가 간 입양이라는 산업 체계 속에서 수출품으로 전락한 존재, 그 분노는 종국에는 국가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향한다. 비혼 여성과 그녀가 낳은 아이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것이기에 사회에서 추방돼야 할 비정상으로 분류됐다.


생명은 평등하지 않다. 사회가 반기지 않는 생명들이 있었다. 미혼모, 10대 여성의 아이들은 비정상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동일성을 붕괴시키는 다름은 배제돼야 할 가치로 여겨졌다. 비혼 여성과 그녀가 낳은 아이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것이기에 사회에서 추방돼야 할 비정상으로 분류됐다. 당연히 사회적 지원도 없었다.


국가는 이탈하는 시민들을 문제적 집단으로 봤다. 무관심과 낙인 비난 속에서 베이비스쿱 시대가 열렸다. 국자로 퍼내듯 아이들을 퍼간 시대. 한국은 세계 1위 어린이 수출국이었다. 98년까지 한국은 미국에 어린이를 가장 많이 입양 보낸 나라였다. 해외입양은 허술한 사회복지 문제를 해소하는 수단이자, 가부장적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 됐다.


'자발적 비혼모'가 된 방송인 사유리는 한국이 아닌 일본 정자은행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야 했다. 국내에선 국가가 정한 가족이 아닌 이가 정자 기증을 받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부부가 구성하는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본다. 민법 제799조는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형제자매에 제도적 가족을 한정하고 있다. 비혼모가 되는 길의 자발성을 국가는 허용하지 않는다. 거기엔, 법적 배우자와 정자 기증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그녀의 출산 소식 전 정부는 산모 출산 기록 비공개 방안을 포함한 '보호 출산제' 검토 방침을 밝혔다. 이른바 '비밀 출산제'다. 입양 전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제도가 산모 개인정보 노출 우려로 영아 유기 살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왜 어떤 생명은 축복인데, 어떤 생명은 고통인가.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은 묻는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게 낳은 뒤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벼워?" 그 질문 전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편견, 법, 양육 환경에 이지 않고 그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온전히 자발적으로 가지고 있는가를.

문재인 정부는 '세상 모든 가족을 포용하는 사회기반 구축'을 제1번 정책과제로 삼은 바 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가족을 만들겠다는 다짐, 사실상 가족이었지만 소외돼 온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혼인,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유지하기로 다.


그것은 허상이다. 영어로 가족을 뜻하는 패밀리의 어원은 라틴어 파물루스(famulus)서 비롯됐다. 이는 주인 한 명이 소유한 모든 노예를 통칭한다. 그리고 이는 1명의 남성이 거느리는 하인, 아내, 아이로 확대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하는 '가부장제 가족'은 그 안에 이미 '노예제'를 담고 있다.


왜 이런 제도가 필요했는가. 가부장제와 결합한 가족주의는 국가의 편리한 통치수단이 됐다. 가족은 노동력이 필요한 곳, 사회의 노동력을 위한 장소였다. 중세시대 가족은 인구 재생산, 교육, 종교 등을 담당하는 사회 기본단위로 기능했다. 그렇게 노동, 교육, 돌봄을 손쉽게 가족이란 테두리에 떠넘길 수 있었다. 국가가 정의하는 정상가족 내에선 여성의 돌봄이 가중되고, 그 밖에서는 고립과 불평등이 가중됐다.


우리에겐 어떤 가족이 필요한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혈연보다 공고한 연결고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들, 친밀함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것은 진정한 가족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이다.


"한국인들이여,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바라보라. 우리는 이 노래를 세이렌의 음성처럼 뱃전에 몸을 묶고 들어야 한다"


김혜순 시인이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추천사에 남긴 말이다.


(참조 -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참조 -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참조 - 낯선 시선)

(참조 - 장래가구 추계)

(참조 - 친한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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