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음 Sep 17. 2023

늦지 않게 되돌아가기 위해

"사실은 그날 밤, 달빛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그저 좋았던 그 밤, 아주 잠깐 동안, 그러니까 세탁기를 들어 올리고 쓰러져 있던 노인을 일으켜 세우던 그 짧은 순간에, 그가 그 모든 상황을 귀찮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백수린, 아주 잠깐 동안에>


달빛이 아주 좋았던 밤이 있다. 해가 짧아졌고, 밤공기는 제법 서늘했고, 서울 곳곳의 번화가에서는 불빛과 소음이 흥성거렸던 금요일 밤. 집에는 임신한 아내가 안주와 맥주를 준비해 기다리던 밤. 소설 <아주 잠깐 동안에>는 그 밤 무거운 리어카를 끌던 노인을 도와주던 잠깐 동안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무거운 세탁기를 끌던 노인을 돕지만, 기다리던 아내를 생각하며 서두르던 나로 인해 세탁기는 노인을 덮친다. 나는 알 수 없는 시큼한 냄새가 나던, 집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해 보였던 세탁기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집에는 환했고, 따뜻했고, 고소한 기름 냄새로 가득한 집이 있다. 아내는 뱃속의 아기에게 아빠가 '착한 일'을 하고 왔다고 말한다. 그가 그날 깨달은 것은 내가 선 자리와 타인의 자리의 경계였다. 내가 애써 얻은 안정적인 것들 밖에 서 있는 타인, 그 타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느끼던 두려움. 이후 나는 노인의 죽음을 듣게 되고, 그날 밤의 비좁은 골목에 다시 서 있는 꿈을 꾼다. 늦지 않게 되돌아가기 위해. 


"저는 누구나 어떤 경계를 통과하는 경험을 하지만 누구나 이방인성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에 무감하게 지나가는 사람도 봤고요. 이방인이라는 위치가 굉장히 불안정하고 연약할 수 있지만, 굉장히 고독한 일이지만, 그래도 경계 안쪽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결코 보지 못하는 어떤 삶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이방인의 특권이기도 한 것 같고요" <백수린>


이방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사람, 한 사회의 인간됨을 짐작할 수 있다. 성소수자, 난민, 탈북자, 이주노동자. 그것은 내게서 먼 존재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계 속에 다른 경계가 있고, 경계와 경계는 겹쳐진다. 누구나 어떤 경계에 서 있고, 통과하며 살아간다. 그 선을 깊이 바라볼수록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확장이다. 


지난봄, 나는 두 번의 배달 노동자의 사고를 마주했다. 봄꽃이 지고, 따뜻해진 날씨에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미끄러졌고,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몰려들었다. 고통스러워하던 그를 둘러싸고 누군가는 119 전화 버튼을 눌렀고, 누군가는 헬멧을 벗겨줬다. 헬멧 사이로 이제 스물을 갓 넘겼을 듯한 젊은 남성의 얼굴이 나왔다. 미끄러진 오토바이 사이로 아이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인형이 굴러 떨어졌고, 그의 열쇠고리 뒤로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사진이 달랑거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온 마음으로 그를 살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멍하니 사진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겐 쉼이 주어졌던,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햇살이 참 예쁘다고 느꼈던 5월이었다. 


2020년 6월 경기 군포의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주차위반 차량에 딱지를 붙였다는 이유로 욕설과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폭행을 한 사람은 입주민인 유치원 원장이었다. 경비원은 아파트에 일하러 올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힐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음 해에야 그는 뒤늦게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의 얼굴을 생각한다. 유치원에 찾아오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에게 선함과 악함을 설명하며, 동화책의 선한 교훈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어땠을까. 만약 그가 그날 그 사고현장에 있었다면, '어떡해'를 연신 내뱉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수많은 인파 가운데 존재했을지 모른다. 저연차 교사 앞에서 갑으로 변해 폭언을 일삼는 학부모의 얼굴은 특별한 악인의 모습일까. 어떤 지위, 장소에 따라 그의 얼굴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때론 선하기도 한, 때론 악하기도 한, 때론 가엽기도 한. 


액트오브킬링 스틸컷


영화 <액트오브킬링>은 평범한 악인의 얼굴을 다룬다. 중요한 것은 그곳엔 선악의 경계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 대량학살의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공산당 박멸이란 구호 아래 무고한 당원은 물론 시민들을 무자비로 학살한다. 가장 잊을 수 없던 장면은 전선을 목에 감아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만든 것을 업적처럼 자랑하던 장면이었다. 그는 웃으며 칼로 사람을 죽이면 피비린내가 나서 이 방법을 만들었고, 그 방법이 효율적이었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오랜 세월이 지난 그 순간까지도, 그에게 그 기억은 자랑스러운 업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도 어머니와 자식을 그리워하고,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알면서도 행한다는 것, 묵인한다는 것. 그 수많은 경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여주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을 향해 '아빠는 오늘 착한 일을 하고 온 거니까'라고 말하던 그날 밤의 비좁은 골목에 다시 서 있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게 노인에게 되돌아가기 위해" <백수린, 아주 잠깐 동안에>


그의 얼굴에 내가 있고, 나의 얼굴에 당신이 있다. 잠깐 동안의 망설임들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들이 쌓여, 경계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게 아닐까. 설사, 조금 늦을지라도. 


(참조 - 친애하고 친애하는 사람들)

작가의 이전글 죽음 뒤의 표정을 살피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