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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Aug 13. 2023

죽음 뒤의 표정을 살피는 일

"우리가 기억하는 은주와 뉴스 속 은주의 간극이 너무 큰데, 은주를 모르는 사람들이 은주를 어떤 프레임에 넣어 버렸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우리 안에 표현하지 못한 아픔을 품은 채로 그렇게 10년을 보낸 거죠"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


내가 기억하는 은주 언니가 있다. 입담이 좋던 언니, 잘 웃던 언니, 합평회 시간에 또박또박 의견을 말하던 언니, 내게 글을 쓰게 하던 언니, 루시드폴의 '오, 사랑'을 부르던 언니. 나는 항성을 도는 행성처럼 그런 언니 곁을 맴돌고, 언니의 옆 얼굴을 가만히 훔쳐본다. 언니는 지금 곁에 없다.


소설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는 죽음이 아닌 삶을 말한다. 세상이 기억하는 그녀의 죽음은 마지막 순간의 한 장면, 한 프레임일 뿐이다. 그것이 산 사람과, 죽음 사람을 아프게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최고은 작가의 죽음 뒤 글을 남겼다. "물론 그녀가 풍족하게 살아갔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꾸려갔다고 들었다. 이런 진실을 외면한 채 고은이를 아사로 몰고 가면서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글을 남겼다.


타인의 고통은 쉽게 전해지고, 이후에도 고통의 당사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가난. 문인. 고통은 그 두 가지 단어로 정리됐고, 그 이외의 그를 죽게 한 것은 보지 못하게 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결국 우리는 사진이 말해줘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을 읽게 된다.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기억한다는 데는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 기억한다는 데 있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진실은 프레임 너머에 존재한다. 그것은 그의 삶 속에 있다. 단절된 삶은 없다. 그의 삶은 나의 삶과 연결돼 있다. 어떤 삶에도 빛만 있진 않다.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흐리다. 어떤 날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삶에 존재한다. 그의 흐린 날과 나의 흐린 날은 닮아 있다.


왜 죽었는가. 서사는 다르지만, 서사가 포함된 세계는 하나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다. 삶은 그 안에 존재한다. 남은 자의 몫은 그가 속했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살게 하는 일이다.



13년 전 미국 명문대학을 다니다 중퇴한 20대가 있었다.


그는 전날 밤을 새워 게임을 하다 이웃 주민에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그는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의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갔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내향적, 고립, 유학생활 실패라는 단어가 그의 죽임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가. 혹은 강남, 명문대학이란 단어가 어떤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정말 13년 후의 죽임을 막을 수 없었던, 묻지마 살인인가.


그 단어들 속에 그가 왜 그런 위험한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는 없다. 한 사람만이 존재할 뿐 그 세계 속의 우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 속 또 다른 누군가를 살게 하지 못한다.


모든 죽음엔 우리가 있다. 타인이 우리와 같은 약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낯설다는' 인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 죽음이 우리에게서 낯선 것들이 될수록, 낯선 것들이 존엄과 안락에 대한 중간적인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할수록, 살아야 할 것들은 살지 못한다. 단단한 벽 뒤의 존재들은 많아진다.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는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작동한다.


"뉴스에 은주가 남긴 쪽지가 나왔는데, 그걸 계속 가난과 연결 짓더라고요. 근데 그 동네 사람들은 거기선 그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단 걸 알아요. 물론 은주가 경제적으론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웃고 농담하고 그랬어요"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


우리가 지금 말하는 단어들이, 그 단어들이 짓고 있는 세계를 생각한다. 정신질환자, 무직 청년, 유학에 실패한 청년, 특목고에 실패한 청년, 명문대생을 동경했던 청년. 그곳엔 우리가 성공으로 규정하는 지점이 있고, 그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6년 OECD는 한국을 최악의 위험사회로 지목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 불안감과 고립감이 가장 큰 나라, 사회적 신뢰의 토대와 기반이 취약한 나라. 그럼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 고용 상황과 불평등, 건강성, 사회통합성 등 5가지 영역의 주요 지표에 따른 것이었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가장 심각하고, 노인빈곤율은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으며, GDP 대비 복지지출은 가장 뒤떨어진 상태에 있었다. 자살률 1위 오명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50대의 사회적 고립감은 회원국 중 가장 위험한 상태로 조사됐다.


그것은 경고였다. 그리고 그 경고음은 8년이 지난 현재도 유효하다. 사람에겐 인간으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 선이 침범받을 때 사람은 모멸감과 분노를 느낀다. 정신질환자도 사회에 속해 한 구성원으로 살게 할 방법. 그 가족들도 돌봄의 부담을 덜며 살 수 있게 하는 방법, 명문대, 특목고가 아니어도 존엄을 지키며 살게 할 방법. 그런 것들이 모여 이 세계를 만든다. 죽음을 막고, 죽고 싶은 세계를 막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한다.



"죽는다는 것 생각해 본 적 있어"


영화 바비 속 바비에겐 죽음을 생각한 뒤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입 냄새가 나고, 발꿈치가 내려간다. 바비는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드러나는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이 자신을 인간답고,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바비는 인형이 아닌 사람에 가까워진다. 완벽하지 않은 것, 온전하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 삶이라는 것. 그런 삶들도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죽음 뒤의 표정을 살피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쓰게 해야지. 못 쓰게 할 게 아니라"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 속 은주 언니는 말한다. 펜을 떨어뜨린 것 같다는 내게 주워서 다시 쓰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한 줄 한 줄 다시 쓰기 시작한다. 타이핑하는 손가락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그녀는 내 글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지점들을 발견하고, 내가 글을 쓰게 하는 '희미한 빛' 같은 존재가 된다.


그는 사람을 살게 하는, 빛나게 하는, 빛을 찾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넘어져도 괜찮은, 그런 것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세계다. 그런 것들이 이 세계 속 우리를 다시 살게 할 것이다.


(참조 - 타인의 고통)

(참조 - 수전손택의 말)

(참조 - 대가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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