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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 Apr 12. 2020

넌 몰라

Workshop Espresso, Sydney


쉬는 날이면 본격적으로 가고 싶었던 커피집으로 간다. 일을 마치고 들러서 마시는 한잔의 커피도 좋지만 커피여행 중인 나에겐 쉬는 날 아침 일찍 찾은 커피집에서 시간별로 느낄 수 있는 그곳이, 그 하루가 더 의미 깊었다.

여느 날과 같이 눈여겨봤던 커피집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기분 좋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일 커피를 만들고 또 쉬는 날 커피집으로 여행 가는 내가 내내 궁금했었나 보다. 내 아래층에 사는 혜지 언니가 물어본다. (나는 4명이서 아래 위층씩 2층 침대를 쉐어하며 사는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나도 따라가도 돼? “


의외였다. 한국에서 무역회사에 다녔던 언니가 커피에 대해 얘기한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우리는 야근이 잦아서 믹스커피를 달고 살아."라고. 그래서 나는 당연히 언니는 스페셜티 커피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6년 전쯤에는 그런 공식이 있었다.


믹스커피 마시는 사람 = 카페 커피 안 사먹는 사람


그렇게 호주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때 한국에서 커피는 그 한잔의 의미보다는 커피를 테이블에 두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의미가 더 컸다.

그렇게 그날 우리가 갔던 카페는 늘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에 있었던 WorkShop Espresso워크샵 에스프레소였다.

늘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는데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은 그냥 믿고 들어 가면 되는 것이었다.

몇 주 동안 그 곳 앞을 지나다니며 갈까 말까 망설였던 내가 바보 같이 느껴졌다.

호주에 와서 사람이 붐비는 곳은 맛있는 집이라는 공식을 찾고 나니 더 이상 내게 TOP 50’S 커피책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날 이후로 언니는 나의 커피메이트가 되었다.

다음번 쉬는 날 우리의 커피 여행지는 Gypsy Espresso집시 에스프레소였다. 우리는 햇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길거리 테이블에 앉았다. 언니는 호주 특유의 유리 글라스에 준비되는 LATTE라테를, 나는 늘 그렇듯 Cappuccino캡취노를 주문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라테를 한 모금 마신 언니의 입에서 나오던 그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미은아, 어제 거기가 더 맛있는 거 같아.”


세상에, 커피의 커짜도 모르는 언니가 맛을 얘기하고 있었다. 평생 커피를 즐겨 마시던 사람이 아닌데 어딜 가든 평균 이상 하는 호주의 카페에서, 그것도 단 몇 군데만 다녀본 언니가 정확히 말을 했다. 오늘의 여기보단 어제의 거기였다고.

물론 커피는 모두에게 자신만의 취향이 있고 집집마다 그들만의 특색이 있다. 그렇지만 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도 어제 그 집이 더 맛있었다.


한국에서 지낼 때 도 맛있는 커피집에 가본 적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그 뒤였다. 커피를 너무 맛있게 마시고 그다음에 그곳에 친구를 데려가면 맛이 변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누구도 데려가고 싶지 않을 만큼 맛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생각했다.

항상 맛있는 커피 한잔을 파는 커피집을 만들고 싶다고.


그렇게 나는 호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호주에 있는 여러 카페를 다니면서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날 언니가 내게 표현해줬던 커피에 대한 생각, 그 한마디는 내게 평생남을 교훈이었다.


내가 먹는 커피가 어느 나라 콩인지, 어느 정도로 로스팅이 된 건지, 어떤 비율로 블랜딩이 되었는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든지 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마신 이 커피가 맛있었는지 어제 마신 그 커피가 맛이 없었는지는 더욱이 잘 알 수 있다.


그것이 내 앞으로의 호주식 커피집의 모토가 되었고 난 다짐했었다.


항상 일정하게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만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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