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oho Jul 07. 2022

나에겐 초능력 _ 수영

용기가 필요한 운동





   친구 Y의 장점 중 하나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확실하게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십여 년 전 즈음 그녀가 블로그와 다이어리에 목록을 적어 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요즘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비슷한 시리즈로 ‘내가 좋아하는 장소’도 있었다. 목록에서 나와 함께 먹었던 음식이나 즐겨가던 장소도 눈에 띄었다. 그녀가 들려줬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것들도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근사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녀를 따라 목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생각과 달랐다. 몇 가지를 적고 나니 금세 쓸 단어가 바닥나버린 것이다.

   나도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한다고 자부했는데, Y는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Y가 몇 년 전 제일 좋아했던 것이 수영이었다. 그녀는 열심히 강습을 받았고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자유 수영도 꾸준히 다녔다. 나는 그녀와 만날 때마다 수영예찬론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나지 못할 때도 SNS를 통해 수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뭔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Y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불가사리처럼 물 위에 뜬 사진을 보여줬을 때, 나도 수영을 배우면 어떨까 싶었다. 에쿠니 가오리 소설 <좌안>에서 수영을 할 때면 무(無)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도 사고도 감정도 없는 느낌. 있는 것은 자신의 손발과 몸뚱이, 그리고 머리와 시력뿐이라는. 정말 그럴까. 궁금해지고 말았다.


   얼마 후 충동적으로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일 저녁, 퇴근 후 강습을 받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나는 언젠가 Y와 함께 자유 수영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겨우 두 번 수영장에 다녀온 직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 아기집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초기였다. 난감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속이 조금만 더부룩해도 무서웠고, 헐렁했던 바지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두려웠다. 심지어 그때는 결혼생활과 이직한 회사생활 모두 이제 막 시작 단계였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직 물에 뜨지도 못하는 수영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첫 번째 수영 배우기는 실패로 끝나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유치원에 입학하자 그제야 조금씩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던 건지 마침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서 수영 이야기가 유행처럼 돌았다. 나도 다시 배워볼까, 남편에게 혼잣말을 가장해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는 언제나처럼 뭔가를 해보려는 나를 기꺼이 응원해줬다. 이번에는 기필코 배워야겠다고 다짐하며 수영복을 새로 샀다. 일주일에 두 번, 밤마다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수영가방을 들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밤공기가 유난히 시원했다. 

   나는 유아 풀에서 걸음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앳된 얼굴과 피부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던 여자분이 초급반 담당이었다. 

   수업이 몇 차례 진행된 후 어느 날, 선생님은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직장 끝나고 수업 듣는 거예요? 아니면 학교 끝나고?”

   “설마요. 너무 잘못 생각하신 거 같은데. 선생님이 어떤 생각을 하시든 그것보다 더 많을걸요?”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몇 살이냐고 되물었더니,

   “회원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릴걸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언뜻 물에 젖은 하얀 피부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작은 체구에 비해 너무 큰 티셔츠와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시선이 갔다.

   “옆에 앉아도 돼요?”

   처음 보는 어린 학생이었다. 텅텅 빈 버스에서 굳이 내 옆자리 가방을 치우고 앉은 사람이 초급반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정말 내 예상보다 훨씬 어렸다. 대학교 2학년이고 아르바이트로 저녁마다 수영장에서 강습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나에게 친구처럼 이런저런 말을 이어갔다. 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자취 생활 이야기였다. 휴학할까, 이 아르바이트를 계속할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무언가 조언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들으며 선생님 나이였던 나를 떠올려보는 수밖에. 선생님은 언제 수업 끝나고 같이 치킨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수업 끝나면 너무 배고프지 않아요? 치킨 아니면 떡볶이나, 다른 것도 좋아요.”

   선생님은 나를 아주 좋게 봤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선생님이 좋았다. 꾸미지 않은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영강습을 받는 처지에 나로서는 불편한 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두 달이 넘도록 물에 뜨지 못했다. 심지어 나와 같이 시작한 다른 수강생들은 유아 풀을 벗어나 성인 풀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할 동안 나는 새로 등록한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유아 풀에서 허우적거렸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듯싶다가도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이 들어서 제자리에 서기를 반복했다. 겁을 먹은 만큼 온몸에 힘이 들어가 물에 뜰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차라리 발이 땅에 닿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른 법이라고 했다. 나는 그 시간을 버티며 배울 자신이 없었다. 점점 선생님과 대화하는 일이 불편해졌다. 그런 상태로 선생님과 치킨을 사 먹으며 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생님이 정말 좋았지만, 나도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저녁 시간을 자주 할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핑계 삼아 수영 등록을 포기했다. 마지막 수영강습을 받으러 갔던 날, 그날따라 다른 선생님이 초급반 수업을 들어왔다. 그래서 그녀와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연락처라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그녀를 밀어낸 건 내 쪽이었으니 알고 싶은 건 욕심일 것이다.

      

   “우리 다음에 치킨 먹으러 가요!”

   수영은 못해도 치킨은 정말 좋아하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겐 초능력 _ 다이어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