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하는 법을 알려줘 #8
이 시리즈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나를 기록하자, 그러다 보면 ‘나를 좋아할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그 시작으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주(住)에 대해 나열해 보기로 했다.
나는 주거에 대한 불안이 큰 편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거주지가 그 원인이다. 이는 아무래도 열세 번을 옮겨 다닌 탓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서 자란 첫 번째 집부터 중간을 거쳐 간 집들, 그리고 현재 사는 집까지, 나의 29년을 정리해 볼까 한다.
첫 번째 집. 시골 외딴곳의 조립식 주택으로 거실과 부엌이 혼합된 공간과 안방으로 부르는 열악한 상태의 방이 있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의 기억은 모두 이곳에 담겨있었다.
두 번째 집. 첫 번째 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동안 임시로 살았던 곳이다.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른 공간에 벽지와 장판으로 ‘집’이라는 암시를 주는 2평짜리 공간이었다. (현재는 창고로 쓰고 있다.)
세 번째 집. 새로 지었던 집으로 무려 50평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안방을 포함해 3개의 방과 커다란 거실, 분리된 부엌까지 있는 집이다. 나는 동생들과 방 하나를 같이 썼는데, 아이 셋이 있음에도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네 번째 집. 부모님의 이혼 직후, 어머니를 따라갔던 주공아파트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의 아파트는 안방과 작은 방, 거실이라 부르기 힘든 공간과 부엌이 다였다.
다섯 번째 집.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의 집에 살게 됐는데, 복도가 있는 특이한 구조의 주택이었다. 부엌 겸 거실과 방 2개가 다였지만, 내 방이 갖고 싶다는 이유로 창고의 절반을 허물어 작은 방을 만들어냈다. 이 공간은 창문도 없고 내가 누우면 꽉 찼었다.
여섯 번째 집. 새아버지가 새로 지은 집으로 40평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안방과 작은방 3개, 거실과 트인 부엌이 있었던 겉으로 보기엔 좋은 집이었지만, 반년 만에 곰팡이 소굴로 변했던 기억이 있다.
일곱 번째 집. 대학 진학 후, 기숙사에 살게 되었다. 룸메이트 세 명과 함께 지냈다.
여덟 번째 집. 성적순으로 배정되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구했던 자췻집이다. 상당히 어두운 공간이었고 가위도 많이 눌렸지만 그다지 나쁘진 않았던 거 같다.
아홉 번째 집. 전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던 자췻집이다.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열 번째 집. 세 번째 집과 같은 공간이지만, 내가 여섯 번을 옮겨 다니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따로 세기로 했다. 이혼 후 아버지 혼자 살아가던 공간이 된 이 집은 어릴 적과 비교해서 상당히 바뀌어 있었다.
열한 번째 집. 상경 후, 전 룸메이트(위의 아홉 번째 집에서 함께 살던 그와 동일 인물)와 함께 살던 빌라인데 3개의 방과 거실과 부엌이 합쳐진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큰 집이었다.
열두 번째 집. 전 룸메이트와 헤어진 뒤 살게 된 삼 평짜리 원룸이었다.
열세 번째 집. 현재 살고 있는 12평짜리 원룸이다. (이 공간에 대해서는 2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계속해서 환경은 바뀌었다. 그 안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곤 한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나쁜 일도 있었다. 살아왔던 시간만큼, 살아왔던 공간들 또한 소중한 법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쌓여서 현재의 내가 되었다.
내년이면 서른이다. 아직 ‘나의 집’이라 부를 만한 공간은 없다. 그곳은 아직 꿈속에 있지만, 언젠가는 현실로 불러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