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있던 취향을 찾아서

나를 좋아하는 법을 알려줘 #9

by 김진혁

나에게 옷은 ‘입는다’보다, ‘두른다’라는 개념에 가까웠다.


방한이 되고 몸을 가릴 수 있으면 됐다. 기능성, 효율성, 경제성이 우선순위에 있었다. 태어나고부터 청소년기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옷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어릴 적의 옷은 대부분 물려받은 것이었다. 헤질 때까지 입고, 작아지면 동생에게 넘겼다. 성장 속도를 생각해 큰 옷을 사서 몇 년을 버티기도 했다. 코디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맨투맨, 후드티, 목이 늘어난 반팔, 무릎이 나온 추리닝만이 옷장에 있었다. 청바지는 거의 입지 않았고 바지는 대부분 추리닝이었다. 옷이라는 건 그저 ‘옷’일 뿐이었다.


교복을 입던 시기엔, 몇 년간 매일 같은 옷을 입다 보니 사복에 대해 생각할 이유 자체가 사라졌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고 다시 ‘사복’을 입게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옷매무새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새내기 때는 생활한복을 사본 적도 있다. 당시의 나에게는 상당히 비쌌지만, ‘처음으로’ 좋아하는 옷을 내가 골라서 입어보았다는 의의가 있다. 교복 외에는 입어본 적 없는 블레이저나 셔츠도 사봤고, 유행하던 스키니진도 한 번쯤 입어봤다. 그 시기의 옷장에는 ‘취향일지도 모르겠는 옷’들이 늘어나 있었다.


그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생각보다 잘 입지 않게 된다는 점이었다. 학생이라는 위치, 취준생이라는 상황, 그리고 직장인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고려했을 때 손대기 어려운 옷들이 생겼다. 옷은 버려지고 또 새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좋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샀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들도 많았다. 그때의 나는 아직 나에게 맞는 옷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옷장이 흑백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검은색-흰색, 그리고 그 사이 티 나지 않는 회색빛의 옷들. 주변에서는 칙칙하다며 밝은색 옷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밝은 베이지색 코트를 사게 됐는데, 기장도 디자인도 모두 맘에 들었지만, ‘밝은색’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 코트는 거의 6년째 옷장 안에 있다. 아마 세 번 정도 입었던 것 같다.


반대로 검은색 옷은 조금씩 늘어났다. 완전히 새까만 검정도 있고, 차콜처럼 미묘하게 색이 있는 옷도 있다. 흰색 스트라이프가 포인트로 들어간 옷도 있고, 한쪽은 검정 반대쪽은 흰색인 코트도 있다. (당연하지만 그 코트는 지금 내 옷장에 있다.) 이제 바지도 청바지를 주로 입는다. 파란색부터 검은색까지, 같아 보이지만 다른 색의 청바지들이 내 옷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스타일도 조금씩 변했다. 어릴 적의 후드티에서 벗어나 지금은 셔츠를 더 자주 입는다. 넥타이를 사볼까 하는 나를 보며, 이전의 나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일이라 생각한다. 이는 신발에도 적용됐다. 사시사철 운동화를 신던 내가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까지 챙겨 입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지만, 케주얼정장이 내 취향인 걸 어쩌겠나. 그냥 그렇게 입고 다닐 뿐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롱패딩을 두르고 살지만, 날이 풀리면 닫혀있던 옷장이 다시 열릴 것이다.


나는 이제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늘리지 않고, 나에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하게 됐다. 취향은 선명해지고, 개성이 드러나고 있다. 아직 이 옷장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