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육문화가정이기도 합니다
엄마가 “우리 너무 시끄럽게 떠드나…?”라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남편은 “저희 집은 4개 국어로 떠들어서 몇 배는 더 정신없는걸요!”라고 말했다.
우리 집은, 그러니까 결혼 하기 전의 우리 집, 우리 가족은 단일문화가정(?)이었다. 주변의 친구들도 모두 (정말로 100%!) 그랬고, 기억하는 한 학창 시절에도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 아닌 친구는 없었다.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 온갖 나라들에서 온 교환 학생이니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다문화가정 출신 친구는 없었다.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니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더욱 좁아져 다시 단일문화가정(!) 출신 사람들로 가득했다.
퇴사를 하고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인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한국 대학 시절보다 더 많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다. 아니, 하나의 국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친구들이 너무도 많았다. 한 스위스 친구가 “나는 무슨 나라 출신이냐는 질문에 “음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데…”라고 답하는 친구가 부러워. 우리 엄마는 이탈리아어권 스위스 출신이고, 우리 아빠는 독일어권 스위스 출신이고, 나는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재미없지?”라고 말했을 때 “니가 진짜 재미없는 이야기를 모르는구나.” 라며 나는 실제로 혼혈인 사람을 중국에 와서 처음 만나봤다고 하니 놀라면서도 흥미로워했다. 국경이 계속 바뀌다가 아예 열려버린 유럽 대륙 출신에게는 놀라울 수도 있겠다.
그러던 내가 다문화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와서 처음으로 두 가족이 다 같이 추석을 보내던 날, 왁자지껄한 명절 분위기 속에서 엄마가 “우리 너무 시끄럽게 떠드나…?”라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남편은 “저희 집은 4개 국어로 떠들어서 몇 배는 더 정신없는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후 남편 외할머니의 팔순 생신 잔치에서 실제로 겪은 “4개 국어 대잔치”는 생각보다도 더 정신없었다. 모두가 2~3개 국어를 하는데, 그 언어들이 완벽히 겹치는 것이 아니라 제4의 언어인 국제공용어 영어가 필요해 총 4개 국어. 항상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통역을 해 주고 있거나, 같은 말을 다른 언어로 두 번씩 말하고 있는 그 상황. 서로의 언어를 어느 정도는 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라 그런지, 시댁 어른들은 한국어를 잘 모른다는 것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씀을 내게 몇 번이나 하셨다.
나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상황이 다른 것만큼, 앞으로 다가올 세대도 달라질 것이다. 여러 변화 중에 내가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 바로 다문화가정이다. 국제결혼을 한 친구들도 많고, 이민 1세대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국제화는 이렇게 내 삶 가까이에 와 있는데, 지금껏 평생을 한국어만 말하고 한국인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일상에서 크고 작은 것들에 놀라곤 한다. 이 이유로, 1에서 5로 갑자기 확 변해버린 나의 일상을 기록해보려 한다. 그리고 10년은 지난 후에 다시 이 글들을 읽어보고 싶다. 이제 더 이상 국제결혼을 하는 친구를 보고 놀라지 않듯, 나중에 다시 보면 당연하게 느낄 일들이 많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