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 같은 중국

“아시아 음식”이라는 말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말이 “유럽 스타일”인 것이다

by mig

나와 남편은 중국 유학 시절 베이징에서 만났다. 남편의 부모님은 유학 초반기에 베이징을 방문하셨고, 우리는 어떻게 10일짜리 여행 계획을 짤 지 고민했다. 당시에는 둘 다 중국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캠퍼스 밖을 잘 모르기도 할 때였다. 그나마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 내가 지금까지 다녀왔던 곳들 위주로 동선을 짜고, 학교 캠퍼스나 이화원, 만리장성 등도 넣었다.


베이징은 계획적으로 재건된 도시이기 때문에 동서남북 또는 환(環, ring)으로 구역을 쉽게 구분한다. 그 중심에는 자금성이 있고, 그 일대는 서울의 사대문 안처럼 옛날의 베이징을 만나볼 수 있는 좁은 골목인 후통(胡同)으로 가득하다. 이 구역 자체를 “후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통 지역”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기에는 걸음으로 커버하기 힘든 큰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카페와 호스텔, 비어 가든이 있는 힙스터 분위기를 풍기는 후통 구역과, 대부분 주거 지역으로 길거리에서 웃통 벗고 마작하는 아저씨들을 쉽게 볼 수 있는 후통 구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주거 지역을 돌아다니던 중 어머님과 아버님이 하시던 말.


“와, 유럽이랑 비슷하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전자인 힙스터 후통이 아닌 후자인 리얼 후통을 걷고 있었다. 철장인지 울타리인지 모를 것으로 둘러싸인 중학교, 성냥갑 아파트 단지에 한쪽에서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유럽 스타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정말 70년대 루마니아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


아하!

유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유럽”의 정의가 편협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유럽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 많아야 5개국 정도만 떠오른다. 외국인이 "아시아"뭉뚱그려 말하면 극동 아시아인지, 동남아시아인지, 서남아시아, 아니면 중동까지 어우르는 개념인지 검증하려 들면서도 내가 사용하는 "유럽"의 편협한 정의는 생각지 못했다. 어찌 보면 “아시아 음식”이라는 말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말이 “유럽 스타일”인 것이다.


어머님은 루마니아에서 나고 자란 독일인, 아버님은 루마니아에서 나고 자란 헝가리인이다. 이 말은, 국적과 관계없이, 90년 루마니아 혁명 때까지 공산주의 국가였던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말이다. 두 분은 아직까지도 거의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수준이고, 국경이 열리자마자 독일로 넘어오셨다. 루마니아에서 소수자로, 2등 시민으로 살면서 겪은 눈물 없이 못 들을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우리는 베이징의 현대적이고 멋진 모습,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뽐내는 모습을 두루두루 살펴보았지만, 뜻밖에 길을 걷다가 보게 된 주택가의 풍경이 부모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기에서 “유럽”이란, 구소련 국가 및 구 공산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개념이다. 남편과 칭다오와 상하이 여행을 갔을 때, 각각 루마니아 및 헝가리가 떠오른다고 했던 것도 생각난다.


최근 읽은 책 <팩트풀니스>에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생각보다 문화 자체보다는 소득 수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부분이 있었다. 개개인의 소득 수준보다 더 영향력이 큰,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정책은 다른 대륙에 있는 루마니아와 중국의 도시들을 비슷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후에 가족 모임으로 루마니아를 방문했을 때, 나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의 모습이나 아파트, 심지어 슈퍼마켓까지도 중국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살았던 친구들에게 무작위로 찍은 사진을 보내니 정말 중국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올 정도였다.


그 아파트와 길거리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루마니아 스타일? 중국 스타일? 70년대 공산주의 스타일? 그러기엔 낮은 주택이 익숙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 한국의 아파트들도 communist blocks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럼 그냥 실용주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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