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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는 '문화 도시'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블록마다 박물관이 하나씩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았고, 모두 무료였다. 책방이나 도서관도 많았꼬, 근처에 대학교도 있어서 왠지 활기도 넘쳤다. 물론 수도이기 때문에 규모도 있고 사람도 많겠지만, 다른 곳보다 비교적 관광객으로 북적인다는 느낌이 덜했다.
보고타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후안 발데스 커피 마시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책 사기, 보테로 전시 보기. 친구 역시 미술관 방문을 좋아한 덕분에 우리는 보떼로 미술관에서 정말 뽕을 뽑았다. 입장료가 없으니 대신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들었다. 중간에 교복처럼 비슷한 옷을 맞춰 입은 학생들이 말을 걸었다. 대화 내용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처음에는 "헬로, 헬로!" 하며 말을 걸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누군가가 조그맣게 말한 이야기에 스페인어로 대답을 해주니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어 대답을 해주고 있다 보니 흡사 기자회견의 한 장면 같았다. 옆에 있던 친구 역시 무슨 연예인 인터뷰의 한 장면 같다며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하는 나'를 크게 흥미롭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계획도 인터넷도 없이 여행을 한 터라 우리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하고 정보를 얻으며 돌아다녔는데, "저기요, 혹시..." 하며 말을 거는 나에게 "와 스페인어를 하시네요?!"와 같은 반응을 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친구에게도 질문을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스페인어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친구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다녔다. 완벽하지 않은 문장일지라도 단어를 통해 우리의 의도를 알아챈 사람들은 친절히 우리를 도와주었다.
워낙 다양한 겉모습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인 보고타이기 때문일지도, 속으로는 놀라거나 궁금했어도 직접 물어보지는 않는 예의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순수한 이 아이들의 질문 공세가 즐거웠다. 내가 저 나이였을 때, 나와 너무도 다르게 생긴 사람이 한국어로 말을 하는 것을 봤더라면 (당시 시대를 생각해서라도) 나 역시 그 신기함을 감추기 힘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