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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 도착했다! 아무런 정보나 배경지식이 없었던 에콰도르와 달리,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기대도 꽤 있었고 그만큼 두려움도 있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책을 꼭 사 와야지, 후안 발데스 커피 꼭 마셔야지, 커피 농장에도 가고 보테로 미술관에도 가야지..'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동시에 잊었던 불안감 또한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사실 여자 둘이 중남미 여행을 간다고 서울에서부터 온갖 호신용품을 챙겨 온 우리다. 저녁 시간도 전에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건가 하며 전전긍긍했던 것과 달리 에콰도르에서는 새벽 세네 시까지 클럽에서 놀고, 안전벨트도 없이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화산 사이를 달리면서 그저 즐거웠다. 그렇게 조금 마음이 편해지나 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나라를 옮겨야 할 때가 되니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괜히 에콰도르보다 콜롬비아가 무서울 것 같고? 미국 달러를 쓰던 에콰도르와 달리 콜롬비아에서는 환전도 해야 했는데, 괜히 바가지를 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구와 함께 이동한다는 것. '각자 알아서' 키토로 오는 방식이 얼마나 대책 없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콜롬비아 여행 역시 계획한 것도, 미리 예약해 둔 것도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론리플래닛을 e북으로 구매해둔 것이 있었는데, 그 책에 나와 있는 호스텔 중 한 곳을 우리끼리 마음속으로 정하고 도착하면 방문해보기로 했다.
보고타에는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미리 (일방적으로) 봐 둔 호스텔에 일단 가보니 다행히 남는 방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체크인까지 하고, 마침 같은 방에 머물고 있던 콜롬비아 유학생인 프랑스 아이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는 눈을 잠시 붙였다. 늦은 아침 식사로는 또 론리 플래닛에서 발견한 Tamales 집에 갔다. 가격도 저렴한데 그저 너무 맛있었고, 따뜻하고 향이 좋은 차까지 내어주셨다. 행복하게 배부른 상태로 나오니 음식점 주변에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복사 집도 많고. 콜롬비아의 스타벅스라 할 수 있는 후안 발데스 카페에 가서 각자 커피도 시키고, 당근 케이크도 시켜서 커피 타임까지 가졌다. 마르케스 센터에 가서 사고 싶었던 책도 샀다.
일단 배가 부르니 또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어떻게든 놀고먹기만 하면 되는 여행.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서 뭘 할지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마침 이곳에서 주최하는 도보 투어가 있단다. 영어가 유창한 가이드 프레디와 함께 근처에 있는 카페에 방문해 바리스타에게 커피 이야기도 듣고, 생두와 볶은 커피콩, 다양한 커피를 시음해보았다. 이후에는 시내 중심가로 나가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들에 대한 설명과 간략한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간 역사인 혼란한 상태가 콜롬비아에서는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 새삼 와닿았다. 믹 재거가 먹어서 유명해졌다는 얇은 와플인 Obleas를 먹고,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 나는 Chicha를 막걸리처럼 사발로 마셨다. 알록달록하고 예술적인 보고타의 그래피티 구경도 실컷 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인디언들이 하던 게임이라는 술 게임 떼호 Tejo도 했다. 역사가 오래된 놀이라 그런지 실제 화약을 사용하는데, 그래서 화약이 펑펑 터질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물론 덕분에 그만큼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사실이다. 야외에서도 맥주를 마시며 tejo를 했고, 실내 tejo장에 방문해서도 폭죽을 빵빵 터뜨렸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나 했더니, 프레디가 저녁에 다시 사람들을 모아 호스텔 근처 식당으로 데려갔다. A la parrillada todo sabe mejor. 구우면 다 맛있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며 바베큐를 잔뜩 먹고 마셨다. 이제는 정말 마무리인가 했는데 - 우연히 우리와 같은 방에 머물던 네덜란드 아이를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 다른 방에 친구가 있다며 데려오더니 함께 콜롬비아 맥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흥이 많은 우리 가이드 프레디 역시 합세해서 열심히 맥주를 마시다가 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바로 2차를 갔다. 그래서 졸지에 파티나잇! 5주 간의 콜롬비아 여행을 마치고 다음날에 돌아가는 일정이라는 네덜란드 아이들은 마지막 밤을 불살라야 한다며 열심히 샷을 들이켰다. 우리도 콜롬비아에 도착한 첫날이니까 신이 나서 같이 술을 엄청 마셨다. 에콰도르에서는 그래도 택시를 타고 오가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바였기 때문에 신나게 놀고 바로 옆문으로 들어가서 잘 잤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바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와중에 확실히 콜롬비아 사람들과 네덜란드 아이들의 춤사위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유행하는 노래도 다르기 때문에 춤을 추고 흥을 느끼는 동작이 다른 것일까. 우리의 한국적인 춤사위(?)는 또 어땠을까. 보고타에서의 첫날부터 이것저것 많이 하고 돌아다녀서인지,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