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같은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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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토의 마지막을 강렬하게 장식한 것은 과야사민 미술관이다. 지구의 거의 반대편까지 나는 러시아와 핀란드를, 친구는 미국을 거쳐 오느라 지쳤기 때문이었을까, 에콰도르에서의 시간은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흘러갔다. 세상의 중심인 Mitad del Mundo에서 과야사민 재단이 마련한 작은 전시 공간을 만났다.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림도 몇 점 없었지만 나와 친구는 둘 다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하여 우리 둘 다 에콰도르에 오기 전까지는 사실 알지도 못했던, 하지만 에콰도르의 국민 화가라고 불리는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미술관에 방문하기로 했다.
넓은 공간에서 커다란 그림과 마주한 순간. 한가한 낮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서였을까. 그림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만큼 직접적으로 남미의 원주민들이 느꼈던 슬픔과 박탈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분명 밝은 색도 꽤 사용을 한 그림들인데도 불구하고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아프다. 그저 아프다.
그저 '아픔'이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Yo lloré porque no tenía zapatos, hasta que vi un niño que no tenía pies.
신발이 없기 때문에 나는 울고 있었다. 발이 없는 아이를 보기 전까지.
커다랗게 쓰인 이 글귀를 친구에게 해석해주고는, 그 앞에서 둘이 한동안 앉아 있었다. 말없이 서로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소화한 뒤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을 가진 누군가가, 정복을 목적으로 살던 곳에 들어와 사람들을 수탈하고 죽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다. 평소 서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던 친구는 이 전시를 보고 나니 자신이 좋아하는 나라들의 문화와 역사가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종종 즐겨 보는 작가 조승연 님의 유튜브 영상에서 우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보편적이고, 그래서 우리의 공감 능력은 생각보다 크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전 세계에 있는 나라들 중에는 우리처럼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 지배를 받고, 사람들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은 이야기가 있는 곳들이 꽤 많다. 이후에 중국에서 생활하며 친해진 라틴아메리카 친구들과도 농담으로 '독립기념일이 있는 나라 출신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숙소도 계획도 정한 것 하나 없이 도착한 에콰도르였는데, 너무도 재미있었고,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원 없이 푹 쉬었으며,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고 마지막에는 여운이 남는 생각까지 안겨주었다.
자, 이제 콜롬비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