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는 제겐 아직 머네요
수업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길치이기도 하고 첫날이니까 혹시 몰라 넉넉히 일찍 나갔다. 그랬더니 아 너무 일찍 도착했네요.. 우리 집도 지하철역 바로 앞인데 수업 장소도 지하철역 바로 앞. 도어 투 도어로 20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뻘쭘하게 들어가서 텅 빈 교실에서 다른 수업들 안내 책자를 보면서 기다리자 선생님 등장. 그리고 곧이어 다른 학생들도 왔다.
한국어도 어느 정도 그렇긴 하지만 독일 이름은 특히, 이름만 보고서 연령대를 대략 추측할 수 있다.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남쪽, 북쪽, 서쪽 등 지역색이 뚜렷한 이름도 많다. 그래서 선생님 이름만 보고도 '아 할아버지군 ㅇㅇ'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나 하얀 머리가 조금 남아 있는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발음도 좀 샌다. 그런데 쌤이 교실로 들어오는 순간 신나는 기분이 함께 들어왔다. good vibes only가 사람이 되면 이럴까. 이미 신이 나 있는 상태에서 도착해서 수업 내내 그리고 끝날 때까지 계속 신나 있는 사람이다. 기본 표정이 싱글벙글인가 봄.. ㅋㅋㅋㅋ
간단하게 통성명과 자기소개를 했는데, 나에게 이름의 뜻을 물어봤다. 독일에서 이름의 뜻을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 만나서 새로웠다. 그리고 나는 내 한자 이름에 부심이 있기 때문에 (ㅋㅋㅋ 흔하지 않기 때문에) 또 신나서 설명해 드렸다. 아직까지 한국 노래를 불러본 적은 없다며 한 곡 찾아와 봐야겠다고 하셨다. 수업에서 일본 노래는 불러본 적 있다고.
2012년부터, 그러니까 이 노래교실을 운영한 지 10년 차라고 한다. 그 기간 동안 여러 노래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었고, 그 책이 지금 보이는 것만 해도 12권이다. 일 년에 한 권 이상 만든 것. 책을 몇 권 뽑아와서 슥 보니까 과연 독일 노래들이 많기는 하지만, 영국/미국 노래들도 많고, 헝가리 노래, 프랑스 노래, 그리스 노래, 핀란드 노래도 몇 개 있다. 첫 노래와 마지막 노래는 정해져 있고, 그 중간에는 아무나 삘 받는 대로 "이거 부릅시다!' "고고!!' 하고 1초 만에 결정한 후 부른다. 진짜 정신없이 노래 부르다가 오는 시간이다.
중간중간 노래에 대한 썰을 풀어주시기도 한다. 노래나 가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노래는 유튜브에서 어떤 가수 버전으로 보면 진짜 죽인다 뭐 이런 얘기도 하고, 노래랑은 크게 상관없지만 노래 제목이나 가사를 보고 떠오른 아무 말을 하기도 한다(?) 정말 아무 준비 없이 가도 실컷 웃고 떠들다 오는 시간인 것이다.
다른 학생 R는 6주만 있으면 드디어 정년퇴직을 한단다. (나는 이 반에서 신생아.. 하지만 한국에서도 동사무소 노래교실을 다녀봤기 때문에 예상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은퇴 선배(!)인 노래쌤이 "ㅇㅑ 너 이제 맘껏 늦잠 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구!!" 하면서 환영한다. 은퇴가 스몰토크 주제라니.. 그 덕분인지 이 노래를 부르자고 했는데 - 와 첫날 부른 수십 개의 노래 중에 유일하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노래였다! Mit 66 Jahren!
비정기적으로 느리거나 따라 부르기 쉽거나 가사를 음미하기 좋은 독일어 노래들을 한국어로 번역해 공유하고 있다. 되도록이면 한 가수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우도 유르겐의 노래는 명곡이 너무도 많다.. 씬나게 이 노래를 다 같이 부른 뒤에는 "크 이 노래 부르고 이 양반 그래도 66세에서 십몇 년을 더 살았지.." 하면서 시작해 올림피아 할레에 우도 유르겐 콘서트를 보러 갔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 모든 노래는 쌤이 기타나 피아노로 즉석 연주를 하는데, 같은 노래를 불러도 삘받는대로 다르게 연주한다.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접신하는 경우도 있어서 딱히 악보가 의미가 없을 때도 있고 (..) 뭐 그렇다.
기록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저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사실 '66세'라는 것에 감흥이 1도 없고, 그냥 노래 가사에 있는 다른 단어들과 같게 보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참 다른 감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아직은 생각이 짧은 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