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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12. 2016

새로운 영역

고양이, 이사가다

평생 혼자 살 거라고 큰소리치던 우리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이사 온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길을 잃어버린, 길고양이의 새끼, 노랭이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형제와 함께 버려진 그리고 홀로 살아남은 까망이 그리고 독신주의자인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뭉탱이가 되었다. 원룸 바닥엔 노란 털, 까만 털, 길쭉한 사람의 머리카락이 한 뭉탱이가 되어 쌓여갔고, 한 가정의 집사이자 이 사회를 사는 청년인 내게 어느 날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재밌는 뉴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뉴스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평생을 뉴스 소비자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공급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처음엔 뉴스가 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정보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중엔 그 특별한 정보의 대상이 모든 사람의 일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멀리서부터 가까이까지 나는 사람들의 삶에 현미경을 대며 뉴스거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현미경 렌즈를 내 일상에 맞춰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가장 따뜻한 곳엔 폭스, 조금은 덜 따뜻하지만 그나마 따뜻한 곳엔 래핑이, 가장 추운 곳엔 김 집사


집에 있는 고양이, 래핑이와 폭스 때문이었다.


최근 2년 간 살았던 집에서 이사 갈 일이 생겼다. 나와 함께 지낸 시간이 고양이들보다 더 길었던 공간이었다. 이미 틀이 정해진 공간에 들어온 두 고양이는 이 곳에서 자신을 맞추며 살아왔을 것이다. 실제로 래핑이와 폭스는 낯선 영역에 있을 때보다 자신의 영역에 있을 때 더 큰 힘을 보여주곤 했는데, 밖에선 너무 순한 장화 신은 고양이가 집에서는 가끔 폭력적인 호랑이가 되어 피를 보곤 했던 것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안전함을 느끼는 철저한 영역동물, 고양이에게 이사는 삶의 경계가 부서지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양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큰 일이었다.


고양이들의 영역에 변화를 도모하던  그때, 나는 회사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쓰고, 말해왔다. 고양이들처럼 자신의 영역을 기반으로 힘을 키우는 어떤 직업에 대한 이야기, 바로 선거구 획정 문제이었다. 지금 나와 고양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고양이들에게 익숙한 집이 사라진 것처럼, 국회의원들에도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선거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장 3개월 후에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하는데, 선거구가 없다니. 이 무슨 고양이 개 같다는 소리인가. 어려운 단어로 뒤덮인 선거구 획정 기사는 쏟아졌고, 나는  그 속에서 혼돈스러운 새집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어두운 침대 밑에서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래핑이와 폭스를 떠올렸다.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에게 자신의 영역이 없어지는 것처럼,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도 자신의 영역이 없어지는 걸까. 폭스가 즐겨 눕던 스크래쳐 옆 어두운 공간과 래핑이가 숨어있던 침대와 슬라이딩 도어 사이 숨 막히는 틈새가 사라지는 것처럼 후보자들의 뿌리가 박힌 혹은 박힐 공간이 사라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새집으로 이사한 지 3일이 흘렀다.  


고양이들이 슬슬 새로운 영역을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었다. 어찌 됐던 새 집주인과 4년 동안 살겠다고 계약을 맺은 상태, 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영역을 수용해야 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래핑이와 폭스는 여전히 침대 밑 좁은 틈새에서 눈알을 굴릴 뿐이었다. 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고양이 하는 꼴이 나라 돌아가는 꼴과 비슷할까. 작년 한 해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했어야 할 선거구 획정이 해를 넘기고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구가 무효가 된 지 벌써 10일이 넘었다. 물론 우리 고양이들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들도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것이다. 선거구가 정해져야 국회의원이 있는 것이기에 졸속이든 급속이든 혹은 최선의 결과든 간에 총선 전엔 결단이 날 거라는 예상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고양이들은 새로운 영역으로의 첫 발을 내딛을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임시국회의 마지막 날까지 선거구획정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까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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