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언니가 안전했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와 언니는 요새 부쩍 야근이 잦아졌다. 그들은 코로나 검체를 채취하는 간호직 공무원이다. 엄마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 저녁 7시부터 코로나를 관리하는 보건소 본청으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밤 12시까지 그곳에서 해외 입국자나 코로나 추정 증상이 나타난 이들의 검체를 채취하는 일을 한다. 언니도 마찬가지다. 그래 그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쓴 사람 중에 우리 엄마와 언니가 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자주 뉴스를 보면서 불안해한다. 너도 당해 보라며 보건소 직원에게 침을 뱉고 끌어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다. 우리 엄마나 우리 언니 이야기일까 봐.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보건소 이모 삼촌들의 이야기일까 봐.
최근에 순천에서 보건소 직원이 확진을 받았다. 너무 더워 방호복 사이로 잠시 들이마쉰 숨결 사이로 코로나가 숨어들었다. 순천에도 내가 아는 보건소 이모가 있다. 나는 또 두렵다.
공무원. 나는 요새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라는 위치가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내 통장에 입금된 재난 지원금이 이들의 휴가보상비라는 사실을, 엄마와 언니가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 한 국회의원이 공무원의 월급을 깎자는 이야기를 했다. 고통 분담이라는 이유였다. 솔선수범해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번지르르한 그 말이, 나는 왜 그토록 역겨웠을까. 그저 공무원이 가장 고통을 분담하기에 쉬운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는 정말 지금 그들이 어떨게 일하는지 알고는 있을까. 그들은 재택조차 할 수 없다.
보건소에서 일하는 친구는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밤마다 새벽마다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도 고통스럽다고 했다. 권력 감시의 기능을 하는 그들의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새벽에 한 시간마다 자기들에게 전화를 해 근무를 잘하고 있는지 보고하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 엄마도 받은 적 있어? 그런 전화
- 많지야
기자는 아니지만 뉴스 쪽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괜히 밀려오는 미안함에 고개를 떨궜다.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중 누군가의 이야기니까.
우리 언니는 여름이 되면 반바지를 즐겨 입는다. 요샌 반바지보다 방호복을 더 많이 입는다. 우리 엄마는 노안이 왔다.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고글까지 쓰면 곧 땀이 나면서 고글 앞이 뿌예진다고 한다. 가뜩이나 잘 안 보이는데 눈을 닦을 수도 고글을 벗을 수도 없다.
코로나 시국에 안 힘든 사람이 없다. 내가 자는 새벽, 사이, 누군가는 방호복으로 무장을 한 채 환자들의 콧속 깊숙이 면봉을 집어넣는다. 왜 자신이 검사대상이어야 하는지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에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힌다. 또 누군가는 그걸 받아 분석을 하고, 누군가는 대책을 세운다. 검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꾸 생기는데 그들 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대로다. 그렇게 축나는 사람들 속에 우리 엄마가 언니가 이모들과 삼촌들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 언니 오빠 동생 이모 삼촌들이 있다.
그들이 많은 것으로부터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걸 바라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게 그들을 이렇게 내몰 이유가 되는가. 그들도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국민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