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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17. 2016

래핑이의 모닝쉬

지켜져야 할 것과 지켜줘야 할 것

 흔히 사람들은 고양이를 깔끔한 동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털을 핥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볼일을 보고 치우기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래핑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 야생성이 살아있는 고양이는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땅을 파 일을 본 후, 그 위를 모래로 덮는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에게 가르쳐온 생존방법이다. 그래서 집 고양이들의 화장실은 파헤치고 덮을 수 있는 종류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나 우드펠렛 같은.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래핑이가 내가 자고 있는 침대 또한 화장실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낯선 환경이라서 뭘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돌아다닐 만큼 집에 익숙해졌을 땐 아직 어려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화장실 펠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화장실이 적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불만이 있는 걸까. 나는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화장실 4개를 설치하고, 다양한 모래와 펠렛을 써보고, 불만을 가질만한 많은 것들을 바꿨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항상 래핑이는 내가 잠든 순간 일을 저질렀다. 그것도 가장 단잠을 자고 있는 새벽 5시, 정확히 내가 덮고 있는 이불 위에서 두 발을 납작 붙인 채 뜨뜻미지근한 쉬를 쌌다. 이불을 통과해 잠옷에 스며드는 불쾌한 느낌, 래핑이의 모닝쉬에 소리를 지르며 깨기도 여러 번. 그 후, 나는 제대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침대에 래핑이가 올라오는 듯한 소리만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와 고양이 털처럼 손 닿는 곳마다 머리카락이 빠질 때쯤, 카라 병원의 의사선생님은 최후의 결단을 쓰자고 했다.


격리였다.


꺼내달냥!


집에는 까만 기둥으로 이루어진 3층 철장이 들어왔다. 가두더라도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해주자는 생각에 나는 끙끙대며 철장을 옮겼다. 이제 두 다리를 쭉 벋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안도감이 가득 찬 나와는 달리 래핑이는 철장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까만 선 안에서 1초에  1번씩 래핑이는 목놓아 울었다.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던 독립투사의 의지가 이리했을까. 빼앗긴 자유를 갈망하는 래핑이의 눈동자를 나는 가만히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료를 주기 위해 철장의 문을 연 순간 사고는 다시 벌어졌다. 조그마한 틈 사이로 래핑이가 탈출한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사료를 그릇에 덜고 있던 나는 벅벅- 거리는 소리에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예전과 비슷한 느낌에 삐쭉- 털이 섰다. 홱 뒤돌아본 순간 깨달았다. 슬픈 예감은 역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널찍히 퍼져나가는 하얀 이불 위의 노란 원, 래핑이는 이불을 벅벅 긁으며 자신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머리털이 삐쭉 설 정도로 나는 분노한다. 그리고 래핑이의 목덜미를 잡고 철장에 넣었다. 재빨리 더 번지지 않도록 긴급조치를 취하는 내 등 뒤에서 래핑이는 우렁차게 울어재꼈다. 우엉- 우엉-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어대는 래핑이에게 나는 이렇게 소리 지르고 문을 쾅 닫은 후 집을 나와버렸다.


"너는 말이야 기본이 안 됐어. 네가 여기서 지켜야 할 게 그렇게 많아? 내가 너한테 밥을 차려달랬어, 청소를 하랬어. 같이 살기 위해 최소한의 것들을 지켜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넌 네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자유를 또 누리고 싶은가 보지?"


꼴도 보기 싫다며 집에 가기도 싫다며 씩씩 거리는 나의 이야기를 쭉 듣던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 걘 고양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걔가 고양이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말해도 못 알아먹을 거라는 사실도, 바래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같이 살고 싶으니까, 또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이니까 너무 속상한 마음에 말이 막 터져나왔다고 푸념은 이어졌다. 래핑이와 같이 살기 위해 분노를 삭이던 중, 나는 이 모든 게 다 같이 살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말을 되뇌며 살고 있는 것처럼, 래핑이도 다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래핑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 번씩 문을 쾅 닫고 집을 뛰쳐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일은 서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 혹은 지키지 않을 때 벌어졌다. 래핑이의 모닝쉬처럼.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래핑이와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래핑이 탈출 모닝쉬 사건 이후로 반년이 흘렀다. 옛날만큼 서럽게 자유를 갈망하진 않지만, 여전히 래핑이의 눈동자는 밖을 향해 움직인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죄로 우리는 영원히 같은 이불을 덮고 잘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래핑이는 3층 철장에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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