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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26. 2016

고양이의 기본권

당당하게 요구하라


사람 성격이 제각각이듯, 고양이 또한 성격이 제각각이다. 우리 집에 있는 두 고양이도 그렇다. 까만 뒤통수가 매력적인 래핑이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 고양이답지 않게 낯을 가리지 않는 친화력을 보인다. 발목이라면 누구의 것이든 상관 않고 머리를 비비대거나, 무릎이라면 누구의 것이든 상관 않고 궁둥이를 내려놓는다. 반면 뭉툭한 꼬리가 귀여운 폭스는 도도하다. 낯선 이는 물론 밥 주고 물 주고, 잠자리까지 주는 집사에게조차 쉬이 몸을 내주지 않는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래핑이는 신발장 앞에 서 나를 기다리지만, 폭스는 재빨리 침대 밑에 숨어 눈치를 본다.


끼니를 챙길 때 래핑이와 폭스의 차이는 제일 도드라지는데, 래핑이는 밥만 보면 눈이 돌아가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반면 폭스는 제 위치에서 제 밥그릇에 담아주지 않으면 함부로 밥을 먹지 않는다. 아무리 배고픈 상황이라도 지켜져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입을 대지 않는 것이다.


가끔 나는 고양이들의 허기를 빌미로, 갈색 사료를 인질로 삼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래핑이는 사려 한 알에 제발 달라고, 어서 달라고 초특급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폭스는 저 멀리서 콧방귀를 뀐다. 당연히 줘야 할,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권리인 사료를 가지고 뭘 하느냐는 듯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 폭스의 시선을 느낄 때면 나는 이내 장난을 멈추고 제 자리에 밥그릇을 가져다 놓는다.


고양이의 기본권


폭스는 자신이 누려야 할 기본권에 예민하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유를 가지고 있어, 오로지 만져지고 싶을 때만 다가와 고개를 비빈다. 의견 표현은 얼마나 분명한 지,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이 더러울 때 그저 딱 한 번만 냐옹- 하는 것이다. 폭스는 당당히 나와 눈을 마주하고 화장실을 치워 달라, 밥을 달라, 만져 달라 요구한다. 그리고 폭스가 요구하는 것들은 고양이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반면 래핑이는 자신의 권리보다 밥그릇에 담겨 있는 사료의 양이 더 중요하다. 누가 나를 만지든, 누가 나를 혼내든 언제든 밥만 준다면 와서 가르랑 대며 고개를 비빌 준비가 되어 있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더러운 곳을 피해  쌀뿐, 모래를 갈아달라고 똥을 치워달라고 울어대는 법이 없다.


우리 집에서 더 나은 생활을 보장받고 있는 고양이는 폭스다.      


밥만 준다면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는 래핑이와 밥은 당연하고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해도 마음을 얻기 힘든 폭스. 그 둘 중 우리 집에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고양이는 폭스다.  잠깐잠깐 집에 오는 친구들은 만지기 쉽고, 선뜻 먼저 애교를 부리는 래핑이를 좋아하지만 항상 같이 살아야 하는 집사 입장에서는 요구는 많고 애교는 적은 폭스가 더 사랑스럽다. 폭스의 야옹은 알람 같다. 매일 아침 단잠을 깨우는 불청객이지만, 알람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귀찮지만 화장실 청소를 해야 집사도, 고양이들도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기에.



고양이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만, 나는 고양이에게 고양이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켜져야 하는 많은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애교 많은 래핑이도 좋지만, 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폭스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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