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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n 05. 2018

제 3자의 결정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죽인다

살다 보면 남이 내린 결정이 내 삶을 좌우할 때가 온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더 자주.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 순간 나는 남에 의해 변했다. 그건 부모님의 선택이나 선생님의 취향, 혹은 교수님의 생각 같은 모양새로 던져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쪼그려 앉아 맞추곤 했으니까. 조금 머리가 큰 뒤에 나는 누구의 삶을 부수는 돌멩이였을까, 하는 죄책감에 밤을 지새우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날이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때문이다.


누나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했던 아빠를 줄리앙은 '그 사람'이라 부른다. 온 힘을 다해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 진술까지 하지만, 결국 법의 이름으로 줄리앙은 그 사람과 만나야 한다. 제 3자인 판사가 법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이 줄리앙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계기가 될 줄 판사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위기에서 그들을 구해내는 사람도 결국 제 3자다. 찰나의 선택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누군가를 망가뜨리고 또 재조립해나간다.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우리도 철저히 제 3자가 되길 요구한다. 감정을 쉽고 빠르게 이끌어낼 수 있는 음악을 자제하는 아주 조용한 영화. 인위적으로 깔리는 배경음 대신 현실음이 가득하다. 이상하게도 그 덕분에 영화가 말하고 싶은 현실이 더욱 영화스러워졌다.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커피 그라인더 소리가 그 카페의 브금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 전반의 방향을 뒤틀어버리거나 혹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가로질러 버리는 큰 일은, 억울하게도 내 선택이 아니라 남의 선택에 의해 바뀔 때가 많다. 적당히 무신경하고, 적당히 무관심할 때, 되려 큰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제 3자의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오늘 제 3자의 너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건 분명 누군가를 궁지로 몰거나 

또 누군가를 궁지에서 구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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