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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n 14. 2018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에게

아빠에게

지난 12년, 한 번도 선거날이 좋은 적이 없다. 아빠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매일 그 날은 우리 가족 모두를 작두 위에 올려놓는 심판의 날이었고, 누군가 즐겁게 스포츠 경기처럼 개표방송을 바라볼 때 우리 가족 모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벌벌 떨곤 했으니까. 다행히 아빠의 노력은 두 번의 선거에서 빛을 발했고, 불행한 예감 한 번 없이, 긴 시간을 살아왔다. 


그리고 2018년 6월 13일, 

다른 선거날과는 다른 결과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더 이상 아빠는 정치인이 아니다.


사실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아빠를 전폭적으로 도와주지 못했다. 내 일이 있다는 딸에게 아빠도 큰 내색하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잘 하면 된다는 말이, 서울과 나주 사이를 맴돌았다. 말없이 전화를 끊고 아빠 말대로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하며 살았지만, 사실 아빠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하던 상관없이, 큰 정당의 바람이 불면 아빠는 언제든 뒤집어질 쪽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거긴 어떻냐고 아빠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하면 될 일', 이라고 말을 줄이곤 했지만 열심히 해도 안 된 일이 있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이런 고비를 수도 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넘어온 아빠였다.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과거의 노력을 부정할 순 없었다.


무수히 많은 말을 삼켜왔지만,

가장 오랜 시기 아빠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꺼내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그게 바로 아빠라고.


정치에 회의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맨날 구박만 받던 아빠였다. 하지만 사실 다들 이런 말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아빠 덕분에 새로운 정치를 보았다고, 가장 가까이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는 법을 알게 됐다고, 가슴으로 얘기를 듣는 법을 배웠다고,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려면 때론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 아빠라는 정치인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집에 내려갈 때마다 도대체 아빠가 정치인으로 하는 게 뭐냐고 톡 쏘아붙이는 못된 딸내미였다. 그럴 때마다 뒤축이 닳은 신발을 들어 보이며 '이만큼 걸어 다니며 많이 듣는다, 바꾸려고 노력한다, 항상 만나고 항상 노력한다'라고 말하던 아빠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열심히 하는 거 하나로는, 아빠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가슴을 탕탕치던 아빠였다. 밖에서 험한 말이라도 듣고 오는 날엔, 잠꼬대로 더 잘하겠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를 중얼거리던 아빠였다. 나주 어딜 가더라도, '정말 부지런하고 정말 잘 한다', 그런 말들을 항상 듣게 해주었던 아빠였다. 


마음 아픈 결과를 받았지만, 이 결과가 아빠의 지나온 삶을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살아온 삶은 옳았고, 그건 다른 누구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아빠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떨어진 게 아니고, 충분히 잘했고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만큼 노력했다는 걸 다 안다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인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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