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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l 08. 2018

처음, 그림을 팔다

제주도 그림 팔이

밤늦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림을 사고 싶어서요


그래, 제주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림을 팔았다. 제주도 독립서점 ‘무명 서점’ 주인에게. 그림을 그린 지 꽤 됐지만, 그저 기록하거나 기억하기 위해서였기에 누군가가 내 그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게 꽤나 얼떨떨했다. 스쳐 지나가듯 그림 한 장 그리고 떠나온 무명 서점이었고, 친구가 그림을 서점 주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림의 존재조차 몰랐을 순간이었다. 무명 서점을 떠나 한라산을 몸에 들이붓고, 유람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그저 여느 여행과 다를 것 없던 제주여행은 이 전화 한 통으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이 되었다. 


아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봤는데
그림을 자꾸 보게 되더라고요


재밌게도 고양이 덕분이었다. 무명 서점에 고양이 한 마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계산대에 고양이 한 마리를 그려놓은 게 좋았다는 서점 언니. 생각해보니 그 무명 서점엔 고양이만 없을 뿐 고양이가 가득했다. 아마존 출신 고양이 발 깔개 ‘무아’를 비롯해 고양이 스티커, 고양이 그림, 고양이가 가득한 표지의 책. 심지어 ‘ㅁㅅㅁ’이라는 무명 서점의 로고에도 고양이가 있었으니. 서점 언니의 말에 이 모든 걸 알아차린 내가 오히려 눈치가 없었다. 



팔려고 그린 게 아니라서, 돈을 받긴 그렇고요.
책이랑 바꿔주세요.


흔쾌히, 정말 흔쾌히, 내 그림에 가치를 부여해준 당신에게 그림을 드리고 싶었다. 그려줘서 고맙다고 하셨지만, 사실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린 것이므로, 그리고 싶은 곳을 만들어준 서점 언니에게 그림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림과 맞바꾼 ‘존 버거’와 ‘신영배’. 그림을 통해 또 한 사람을 더 알게 됐고, 그 사람의 세상을 보게 될 기회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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