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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un 17. 2019

수의사의 회고록

오늘 동물을 죽이면 내일 동물을 살릴 수 있나요?

동물을 살리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럴 자격을 갖추기 위해 낮밤 가릴 것 없이 노력했고, 드디어 수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었습니다. 돈도 자격이라면 자격이겠죠. 그래서 남의 동물 병원에서 일하게 됐네요. 안락사 전문 동물병원에서요.     


“자넨 왜 수의사가 되고 싶었나?”     


핏줄조차 보이지 않는 눈동자의 원장은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의 물음보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방향에 더 눈길이 갑니다. 푸석푸석한 털 사이로 찔러 넣는 주삿바늘을 봅니다. 저 주사기 안에는 찌르는 모든 것의 온기를 뺏어갈 힘이 들어 있습니다. 저 주사위에 찔리면 아마 당신도 나도 아주 차갑게 식어버릴 겁니다.    

 

동물을 죽이는 일을 하면 나중엔 동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치료는 없애는 겁니다. 병든 소에게, 병든 양에게, 병든 말에게 가장 쉽게 병을 치료하는 일은 병든 생명 자체를 없애는 일입니다.      


“이 정도면 얘네 살리는 거지.
너 저번에 봤잖아. 구제역 터지면 어떻게 되는지”     


네.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닭, 오리 같은 아주 작은 동물에게는, 그나마 작은 돼지에게는 그마저의 아량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땅을 파고 묻죠. 그저 그거면 됩니다. 아프고 작은 동물에게는 그만큼의 돈도 아깝습니다.      


동물을 죽이는 게 살리는 걸까요?

아니, 동물을 죽이면서 저는 나중에 정말 동물을 살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아주 먼 미래에 살리는 게 정말 살리는 걸까요?     

 

저는 정말이지 동물을 살리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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