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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pr 30. 2020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말자

싫어하는 걸 하더라도.

 어제는 이를 닦다가 거울 속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이렇게 바라본 건, 꽤 오랜만이었다. 매일 이 화장실, 이 거울 앞에 서는데, 이상하게 그 거울에 비친 내가 나 같지 않고 꼭 남 같아서 그렇게 스쳐 지나가기만 해왔던 것이다.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되게 지쳐 보였다. 코로나 때문에 어딜 나가지도 못하는데, 그렇다고 집구석에 앉아 글을 잘 쓰지도 않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만들지도 않는 내겐 반짝임 없었다.


2019년의 뉴욕처럼


 나는 요새 무슨 생각을 하지? 뭘 느끼지? 뭘 좋아하지?


말문이 턱 막혔다. 요즘엔 뭘 하는 게 그냥 싫어서, 생각도 하기 싫고, 느끼기도 싫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냥 다 싫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내가 거울 앞에 있었다. 분명 난 무엇이든, 어떤 사람이든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뭐였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웃긴 건 그런 나조차도 참 싫었다는 것이다.


알고 있다. 싫어하는 걸 하면 싫어하는 걸 견디는데 에너지를 다 써서 뭘 좋아할 수가 없다는 걸. 새로운 걸 좋아할 일도, 그래서 시작할 이유도 없고, 심지어 원래 좋아하던 것들까지도 점점 무뎌지게 된다는 걸. 그러다 오늘 같은 날, 싫어하는 건 많은데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는 회색 인간을 거울 앞에서 덜렁 마주치게 된다는 걸.


그래서 무작정 쓰고 싶은 게 없는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이 일이 죽도록 싫어서, 죽을 만큼 하고 싶은 다른 일을 놓치는 건 억울하니까. 




어쩌면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나는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말자. 싫어하는 걸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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