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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18. 2017

야근수당으로 병원비 똔또니

너 왜 이렇게 살고 있니

"야 내가 진짜 재밌는 거 말해줄까?"

너는 항상 어디선가 술을 먹고 와서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평소보다 1.5배 느려진 목소리에 항상 나는 어디냐고 묻고는, 너를 찾아나섰다. 보나마나 연남동 오뎅바나 홍미닭발, 둘 중 하나였다.

오늘은 연남동 오뎅바다.

"야 여기 여기"

코를 중심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너는 손을 흔들었다. 손놀림을 보아하니 청하 두병은 마셨다.

"집에 안 가고 뭐하냐?"

너는 집은 일산이면서 허구헌 날 술은 신촌에서 먹는다.  

"야근이 없는 날은 마셔야지.
이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니냐"

이모가 소주잔을 가져다주러 왔지만 나는 손을 흔들어 됐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너 전화 받을 때마다 마셨으면 분명 몸이 성치 못할 테니까.

"야아 재밌는 얘기 해줄게 진짜 재밌어
얼마나 재밌냐면 (꺽) 개같다는 말이 절로 나와"

너는 트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계를 봤다. 지금이 10시니까 10시 15분 안에 너는 졸기 시작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질릴만큼 익숙한 모습이다.

"야근을 하면 수당이 나오잖아
근데 매일 야근을 하면 사람이 앓아.
그러면 그 야근수당으로 병원비 낸다?


재밌지! 재밌지!
인생 조오올라 리싸이클, 개같이 미라클!"

그리곤 예전엔 알코올 램프향이 난다며 그토록 싫어했던 청하를 한입에 털어넣는다. 네가 회사에 들어가고 5년이 흘렀는데 변한 건 술취향 뿐이다. 나는 너의 잔을 채웠다.

"요즘엔 더 웃겨.

인사부장이 바뀌었는데 (꺽)

야근 수당 신청하면 눈치를 그런 눈치를 줘요.

그래서 요새 사람들 야근 수당 신청을 못해.

야근은 하는데. 야근하느라 버스도 끊겼는데,

교통비 신청도 못하지.

왜? (끅) 기록 상 야근을 안 했으니까!"

너는 또 술을 원샷했다. 그리곤 허공을 쳐다보더니 이내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로 나를 응시했다.  그 순간 나는 시계를 앞당겼다. 울음까지 터졌으니 네가 정신을 놓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이 준다.


다시 네 잔에 술을 채웠다.

"엄마가 이러라고 식당에서 찬물에 설거지하면서
나 키운 거 아닐텐데,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냐?
어? 야 말해봐. 왜 이렇게 살고 있어?"

이제는 테이블에 엎드려 끅끅거리는 너다. 이럴 땐 내비두는 게 답이다. 분명 말리면 말릴수록 더 큰 소리로 울 테니까.


역시 얼마나 지나지 않아 울음소리는 잠잠해졌다. 너는 더이상 흔들리지도 않았고 어떤 소리를 내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네게 가까이 상체를 숙이자 푸,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10시 11분,

너는 드디어 잠들었다.

나는 택시를 불렀다. 모든 일이 아주 익숙하게 느껴졌다. 너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술값을 계산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고, 택시 기사아저씨한테 니네 집 위치를 설명하고, 다시 전화해 잘 들어갔는지 최종 확인까지. 모든 순간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졌다.


침대에 누웠다. 온수매트를 켜놓고 나간 덕에 이불 속은 따뜻했다. 눈을 감고 자려단 찰나,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냐?"

너의 마지막 말과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이 아주 익숙하다.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아 머리 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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