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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23. 2017

151155의 뜻을 아세요?

사람 여행

어스름한 새벽, 남해행 버스에 올라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을 켜자 내 주위만 훤하다. 새벽 다섯시, 해는 뜨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은 카카오톡 없이 살고 있던 때다. MMS와  SMS 의 경계를 잊어버린 사람들 속에서 한 때, 80바이트 안에 마음을 눌러 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학생”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통로를 사이에 두고 한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문자 한 통만 쓸게.

핸드폰 좀 빌려줘요”


나는 순순히 핸드폰을 건넸다. 어차피 문자는 남아돌았다. 모두가 문자를 쓰던 때엔 문자 한통이 그렇게 아까웠는데, 이젠 요금제를볼 때 거들떠도 보지 않는 항목이 되어버렸다. 아주머니는 어이쿠, 어이쿠하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화면을 터치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포기한 듯 내게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었다.


-      ㅇ ㅣ ㅈ ㅓㅣ


채 완성시키지 못한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제가 쓸게요. 말해주세요.”

“이제 버스 타요”

"네?"


아주머니는 천천히 어절을 끊어 말했다. 이제, 버스, 타요. 선생님의 말을 하나하나 받아쓰던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으로 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받아 적었다. 문자가 전송됐다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창 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해까지는 꼬박 다섯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가 휴게소에 멈춰서자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내렸다. 당장 화장실이 급하지 않았지만, 또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휴게소 화장실을 대부분 구조가 이상했다. 사람들의 줄 너머로 들어가면 항상 텅텅 비어있는 화장실 칸들이 나왔다. 도대체 누가 이런 설계를 했지, 혀를 차며 나는 유유히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털며 버스에 올라탔다. 아까의 그 아주머니의 머리통이 좌석 위로 불쑥 올라왔다. 다가가자 아주머니는 콜라를 내밀었다.


“학생, 아까 문자 고마웠어.”


자리에 앉자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사실 좀 신기했어. 보통 학생 나이대에는 다 카톡하잖아. 근데 학생은 문자를 쓰더라구.”


요새 어른들도 만만치 않다고 말을 하려다가 관두었다. 괜히 잡스러운 소리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이래저래 카톡을 쓰지 않게 된 이유를 떠들어댔다. 언제나 어딘가에연결되어 있는 느낌, 80만큼 무거웠던 마음이 1만큼 가벼워진 시대 그리고 나의 상실감 같은 것들이 내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예전에 80바이트를 채우는 건 분명 나였는데,

이제 1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 철저히 남이에요.

왜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요."


아주머니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내게 물었다.


“학생, 151155가 무슨 뜻인지 알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5를 V 로 바꾸면  1V1155, MISS, 그리워.

아주 오래전에 어쩌면 학생이 태어나기도 전에

삐삐로 그런 숫자를 주고받곤 했어.”


010, 660660, 아주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뭉텅이째 꺼내놓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공중전화로 달려가던 그 감정. 아무리 애를 써도 알지 못할 과거의 무언가. 한 때, 아주머니가 말하던 삐삐세대의 감성을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요새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뭘 느끼는 지 사실 잘 몰라. 근데 요새 젊은 사람들도 우리가 어떻게 뭘 느끼는 지 잘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하나..”


버스가 남해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남해여행을 떠올릴 때마다, 그 순간이 가장 151155해진달까. 다시 아주머니를 만나면 내가 모르는 아주머니의 감성에 대해 더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시 남해로 떠나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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