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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26. 2017

집에 갈까 말까 01

가족 싸움의 서막

서울에서 전라남도 고향까지는 차가 막히지 읺을 땐 4시간, 이런 명절 땐 기본이 6시간이다. 작년 추석 때에도 갈 지 말 지 참 고민했는데, 이번 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주와 내가 연결된 출생이라는 탯줄이 많이 얇아졌다는 걸 깨닫는다. 더이상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는 게 당연하지 않다.

사실 내려가서 좋은 일이라곤 엄마아빠의 얼굴을 보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밖에 없다. 이번처럼 명절을 앞두고 대판  싸우기라도 하면 그마저도 없다. 그래서 말인데 어제 나는 집에 내려가지 않겠다며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가족 싸움에는 역사가 있다. 매 순간 우리는 사소한 것 하나로 처절하게 전투를 벌이지만, 이 전투는 기나긴 전쟁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자기 유리한 대로 상황을 해석하는 법이라, 상대는 전투에 국한시켜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어하고 나는 전쟁으로 확대시켜 넓게 보자고 기염을 토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이번 전투는 고작 500원과 몇 분의 시간 때문에 벌어졌다.

명절 때가 오면 아빠는 분주하게 문자를 보낸다. 일일이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다녀도, 전부를 만날 순 없으니 꼬박꼬박 문자로 인사를 드린다. 핸드폰 문자로도 모자라 문자사이트를 이용하는데, 이 놈의 문자사이트가 문제다 인터넷결제란 게 익숙지 않은아빠는 핸드폰 결제를 이용하는데 핸드폰 결제 금액을 초과하기 일쑤다. 그럼 어김없이 내게 전화가 온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20만원 지금 충전해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아이폰으로는 충전도 못한다. 핸드폰으로 송금할 수 있는지 봤더니 수수료가 500원이길래, 어차피 나가는 길에 있는 은행atm을 이용하면 되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채 5분도 안되어 다시 전화가 울렸다. 왜일까 나는 그때 빚쟁이에게 독촉전화리도 온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지금 충전해라 얼른


아마 아빠는 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항상 이런 자잘한 문제만 벌어지면 보기가 세개나 있는데 엄마아빠는 항상 나를 불렀다.



'네가 제일 잘 들어주니까 그렇지.' 아빠는 말했다. 그럼 이제 된 거냐고, 영원히 나한테만 부탁할 거냐고, 잘 들어주는 애한텐 항상 심부름을 시키고, 안 들어준 애들한텐 항상 그렇게 요구하지 않는 게 공평한거냐고 따져 물으려다 참았었다. 그 때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또 시작이었다.


어쩜 가족 싸움이란 게 이렇게 붕어빵 같은지. 어디가 좀 타고 어디로 조금 반죽이 삐져나갔는지 빼고 똑같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아빠 상황이라는 게 눈을 감아도 눈에 그려졌다.


아무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나를 찾았을 것이다. 항상 이런 건 둘째가 해주니까.물론 자기가 명령조로 말하는지 부탁조로 말하는지 여부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부모자식 간의 소통이라는 게 그릇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얼굴에 물을 뿌리든, 대접에 물을 내밀든, 물만 주면 상관 없을 테니까. 그저 문자를 보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지금 당장 보낸다는 마음 뿐이겠지. 짜증에 얼얼할 정도로 볼을 깨물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해봤자 똑같은 걸, 피맛이 났다. 그 자리에서 500원 수수료를 내고 계좌이체를 하고 나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항상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아마 아빠도 들을 것이다. 나는 대뜸 내게 500원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아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게 부탁인지는 아냐고 재차 물었다.


왜 명령하는데?



20만원이나 500원이나 내 돈에서 나가는 건데, 왜 돈 맡겨놓은 사람처럼 빚쟁이처럼 구냐고. 삼남매 중에 항상 나한테만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도대체 얼마나 만만하길래 나를 이렇게 대하냐고.

500원이 소중하다는 내 말이 웃겼는지 엄마는 웃었다. 나는 천불이 났다. 화내는 사람은 웃는 사람 앞에서 한순간에 바보가 된다.

그 이후로 꼬박 서로 연락이 없었다. 엄마아빠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테고, 나는 엄마아빠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가까운 간격이든 간에

평행선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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