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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Jan 26. 2017

집에 갈까 말까 02

말까

빨리 커서 나가 버려라,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엄마는  악을 썼다. 니네도 커서 꼭 너 같은 자식 낳아봐야지, 어김없이 그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익숙한 레퍼토리.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눈빛이 허공에서부터 나를 향해 날카롭게 쏟아질 때 나는 엄마의 레퍼토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빨리 커서 나가 버려라. 그리고 엄마의 바람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삼남매 모두 기숙사 고등학교로 보내버린 것이다. 열 대 여섯의 나이가 얼마나 큰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집을 나가긴 한 셈이다.

그 때를 기준으로 집을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나도 나이라는 걸 먹는다. 부모의 나이와 가까워질수록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옛말은 거짓이다. 부모가 되지 않으면 절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부모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부모의 나이와 가까워지는 건 수많은 반례를 만드는 것 뿐이다. 아빠가 네 나이 땐, 엄마가 네 나이 땐, 더 이상 그런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 시기가 온다. 엄마 말대로 빨리 커서 집을 나가버린 순간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잘났으면 너 혼자 살아라!


가족여행에서 들었던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단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또 이기적인 기집애가 되어버렸다.


발단은 제주도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였다. 으레 집안의 자잘한 일이 엄마의 몫이 되는 게 못마땅했다. 엄마는 카톡방에 이것저것 여행 계획에 대한 말을 했지만 아무도 답할 생각이 없었다. 다들 자기 일이 우선이니까, 제쳐두는 게 뻔했다. 혹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테니까. 언니와 동생이 각자 준비하던 시험이 끝난 시기였다. 나는 보도국 작은 골방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여행 계획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엄마는 내게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기 시작했다. 가끔 일에 쫓겨 가족카톡방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모두 자기 일인데, 모두의 일이라서 하지 않는다. 이러다 사람이 죽었지, 나는 미국의 아파트 촌에서 죽어간 키티를 떠올렸다.

온종일 제주도엔 비가 내렸다. 호우경보란다. 친구들은 뉴스화면을 캡처해 보내고는, 생존여부를 확인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나는 다른 가족들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나 이랬다. 아무거나 먹자 하는 친구들을 괜찮은 식당에 데려가는 사람도 나고, 아무거나 하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얼 하자는 걸 정해주는 사람도 난데,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을 졸였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니까. 자꾸 얼크러지는 계획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옆에서 동생이 말했다.

- 누나가 가고 싶은 데 안간다고 화 좀 내지 마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내가 가고 싶은 데? 제주도에 그런 곳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선택하고 싶어 선택한 장소도 아니었고, 내가 선택하고 싶어 선택한 날짜도 아니었다. 내가 가고 싶은 제주도 여행은 우도나 애월 어딘가의 게스트하우스에 처박혀 주구장창 글을 쓰다가 바다 한 번 보고 좀 걸어갔다가 돌아오면 그게 여행이었다.

- 너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지

가끔 인간이 동물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 이를 악물고 얘기를 하면 흡사 으르렁거리는 맹수 같달까. 내 말에 동생은 아니냐고, 자기 말이 틀렸냐고 했다. 나는 백번 천번 아니라고 있는 힘껏 소리 지르려다 참았다. 엄마는 나를 달래려고 했다. 거기 안 하는 걸 어떡해, 네가 가고 싶은 건 알겠지만. 나는 더 심통이 났다. 모두 나를 가고 싶은데 못 가서 짜증내는 이기적인 기집애로 보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앉아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구석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백마디 말 천마디 말보다 침묵이 편할 때가 있다. 이럴 때보면 일평생 같이 산 부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연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 때 엄마의 한 마디가 결정타처럼 날아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좋게좋게 넘어가자


입에 실소가 맺혔다.

항상 그런 식이니까.
매번 좋게 좋게 넘어가다가
여기까지 온거잖아



날 선 말들이 식탁 위를 날아다녔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돼, 가족이면 그래도 된다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언제부터 가족이 막 대해도 되는 허울 좋은 변명이 되었나. 잘할수록 못된 것만 돌아오는 이 조직은 지긋지긋하다.

혀끝까지 넘실대던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애초에 엄마가 힘든 게 싫었을 뿐인데, 엄마에게도 다른 가족에게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의 생명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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