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방랑기 3
내가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아서의 집은 주먹밥으로 된 아침을 준다. 아서의 집의 총 정원은 4명인데, 첫날은 게스트하우스에 빈방이 없어 4인 식탁에 빈자리가 없었다. 어떤 곳에선 한 방을 채울 사람들이, 어떤 곳에선 한 집을 채운다. 누군가와 둘러앉아 먹는 것도, 아침 8시반에 누가 차려주는 아침상도 자취생인 내게는 다소 어색하다.
그래도 밥을 주고 싶더라고요
간단하게 토스트로 대체하는 곳이 많다고 운을 떼자, 주인장은 웃으며 답한다. 보통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대개 언니나 오빠로 부를만한, 뭔가의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은 친근하지만 언니 오빠보단 주인장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아니 꽤 어울린다.
사람들 사이의 빈 공간엔 여유가 스며든다. 쓸데없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끔 아서의 집의 대문을 지키는 정남이와 베리 짖는 소리만 들린다. 하지만 아서의 집만 나서면 다른 세상이다. 아서의 집 바로 옆에는 수요미식회로 유명한 아일랜드조르바, 평대스낵 다닥다닥 붙어있다. 돌담길 하나를 두고 달라도 참 다른 공간이 붙어 있다. 오죽하면 '동네 안에 주차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알림판이 4개나 나란히 세워져있을까. 평대리의 주민들은 육지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 처음, 이 곳에 사람들이 찾아왔을 땐 그들도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평대리 바닷가를 따라 줄줄이 생긴 카페에, 택시나 렌트카로 슝 하고 날아온 사람들이 슝 하고 떠나는 모습은 너무 익숙해서 정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분이 어떤 건지 가늠해보려고 하는데. 역시 살지 않으니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한 곳에 머물면서, 그들처럼 걷고, 그들처럼 먹고, 그들처럼 말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가끔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는데 대개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찾아온다. 타지인에 대한 경계와 실망과 뭐 그런 것들. 보통 사람이 현저하게 감정을 느끼는 부분은 긍정적인 것보단 부정적인 것들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서의 집이 새로운 사람을 위해 새단장을 하는 동안, 나는 어딘가 앉아 여유롭게 글을 쓸만한 곳에 가기로 했다. 그러자 주인장은 웃으며 이곳에 그런 카페는 없단다. 내가 울상을 짓자, 그러면 요요무문에 가보라고 해서 짐을 챙겨 나왔다.
고양이 조심, 이라는 말이 적혀있는 팻말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좁은 카페에 사람이 가득이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주인을 쳐다보자, 다른 일행에게 짐을 치워달라 부탁하고, 창가자리를 만들어주셨다. 옆에는 신의 물방울부터 시작해 미생까지 만화책이 가득한 선반이 놓여있고, 앞에는 바다가 있고, 밑에는 고양이가 있다. 조금 시끄러운 것만 빼면 완벽했는데, 잠시 후 사람이 빠져나가자 정말 완벽한 공간이 되었다.
창문 밖으로 앞 집 마당이 훤히 보였다. 돌담 앞 나무선반 위에 신발 한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싶어져 펜을 들었다. 돌담을 그리고, 지붕을 그리고, 배를 그리고, 바다를 그리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글을 쓰러왔는데 또 딴짓이다.
식은 커피를 마시며,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었다. 요요무문은 딱 사람과 사람이 최소한으로 방해하지 않을만큼의 거리만 허용한다. 듣고 싶으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셈이다. 선반 뒤 여자 셋은 스페인 여행을 1년 후에 갈지, 2년 후에 갈지, 그러다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할 지,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안쪽 소파자리에 앉은 남녀는 아직 커플은 아니지만, 소개팅에 나름 성공한 듯 서로의 느낌에 대해 솔직하게 묻고 있다. 내 옆으로 나란히 앉은 세명은 서로의 행선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택시를 어디까지 같이 탈지 논의하고 있는 걸 보면, 숙소에서 만난 사이가 분명하다. 턱을 괴고 한참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문득, 평소에도 이만큼만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스스로를 타박했다.
어 고양이다!
그 때, 옆에 앉아있던 여자 1이 화장실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순식간에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고양이로 향했다. 카페 주인은 무심하게 걸어가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털어 넣는다. 까만 고양이와 얼룩 고양이가 나란히 밥을 먹는다. 크기를 보면 어미와 새끼다. 키우는 거에요? 묻자 길고양이에요, 답하곤 카페주인은 그릇을 정리한다.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여기 꽤 적절하게 불친절하고, 적절하게 친절하다. 그게 좋다. 물론 길고양이게게 밥을 줘서 더 좋다.
숙소에 돌아오자 정남이가 짖는다. 주인장이 나와 말을 건넨다. 조용한 카페가 없을까봐, 청소를 빨리 끝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따뜻한 타박을 한다. 오늘 아서의 집은 더 조용하다. 나말곤 아무도 없다. 거실에서 영화도 보고, 잠깐 나가 바다도 보고, 들어와 책도 보고, 또 나가 밤하늘도 본다. 어디론가 바쁘게 돌아다니는건 일상에서 많이 하는 일이니까.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이, 어제에 대한 후회도 없이, 그저 오늘을 산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