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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저 Apr 01. 2022

아프리카 며느라기

두 지붕 한 가족

예전에는 아프리카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흔했지만 1990년대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해 불안정한 경제구조와 교회의 점진적인 증가 등으로 인해 '일부다처제'에 대한 인식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다처제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법적으로도 합법화 한 나라들도 있다. 그중에 내가 살았던 가봉도 그중 한 나라이다. 일부다처제 - 이것은 여자들에게 심적인 갈등과 가족 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해 결국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정신적 삶에 악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여자 쪽 집안에 지참금을 줄 능력이 되는 부유한 상류사회에 속한 계층들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대신 지참금이 없는 남자들은 맘에 드는 여자와 동거를 한다. 아기를 낳고 실질적인 결혼생활을 하지만 밖에서는 미혼 행세를 하거나 중간에 여자와 아이를 버리는 무책임한 남자들도 있다. 이래저래 여자들만 불리한… 아프리카는 돈이 많든 적든 간에 남자들은 이 땅에서 우월한 존재이고,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아직 열세하다.


빈곤한 검은 대륙, 아프리카.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아직도 일부다처제가 존재하는 곳,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아프리카 며느라기들...

들여다보면 볼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는 아프리카 여인네들의 삶이다.



#1. 남자와 여자가 겸상하지 않는 풍습이 남아 있는 아프리카


아프리카 가봉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날로 기억한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주방 뒷문을 열고 나갔는데, 쎄나네 가족이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내 시야에 낯선 광경이 들어왔다.

우리가 사는 레지던스를 돌봐주는 관리인인 쎄나 아빠와 쎄나를 비롯해 그의 아이들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고 쎄나의 엄마 '제인'은 작은 부엌 앞 바닥에 앉아서 뭔가를 주섬주섬 먹고 있었다.


뭐지? 왜 그렇게 먹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들의 식사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참았다. 다음날 오후, 제인이 빨래를 널고 있었다.

어제 내가 본 것에 대한 질문에 제인은 자기네는 남자와 여자가 겸상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왓?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무리 아프리카라지만 21세기에 남자와 여자가 겸상을 하지 않다니,,, 그것도 바닥에서 밥을,,, 완전히 문화 충격이었다.

쎄나네는 무슬림이다. 그들이 무슬림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프리카인들에게 아직 남아있는 풍습인지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니 황당하였다.


그래도 딸들하고는 같이 겸상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쎄나 아빠는 처가에 지참금을 주고 아내와 결혼했다고 한다. 옆에서 내가 느낀 이들 부부 사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부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남자가 결정하고 여자는 따라야만 하는.. 게다가 줄줄이 두 번이나 딸을 낳은 제인은 늘 아들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했다. 다행히 그녀는 세 번째에는 아들을 낳았다.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굉장히 심하다. 그래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그곳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구박의 대상이 되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보는 것을 참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2.  아들에게 새장가가라고 부추기는 시어머니


어느 날 집안일을 도와주는 파트리샤가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출근을 하였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남편한테 맞았다고 했다. 그녀의 부은 눈과 찢어진 입술을 보며 마치 내가 맞은 듯 가슴이 콩콩 뛰며 마음이 아팠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파트리샤를 처음부터 맘에 들어하지 않은 그녀의 시어머니는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우는 동안 내내 그녀를 몹시 괴롭혔다고 했다. 남편의 두 누나와 여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아프리카 시월드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직도 결혼할 때 여자 쪽에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는 이들은 요즘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먼저 동거부터 시작하고, 아이를 낳은 후 한참 후에야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파트리샤에게 첫눈에 반한 남편이 그녀를 쫓아다녔고 결국 그 둘은 시어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며느리에게 아들을 뺏겼다고 생각한 시어머니의 말도 안 되는 질투와 횡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거하면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시집살이까지 하면서 살고 있었지만 남편은 정식으로 결혼해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었다고 한다. 파트리샤를 내쫓고 싶었던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계속 새장가를 갈 것을 권유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이제 지참금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으니 정식으로 새 신부를 맞으라는 거다.(그 돈의 일부는 파트리샤가 함께 살면서 열심히 도우미 일을 하며 벌어들인 돈도 포함되었다고 했다)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는 순간 파트리샤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자기 어머니 말에 남자도 흔들렸던 걸까?...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골치 아팠던 파트리샤 남편은 어젯밤 괜히 트집 잡는 시어머니에 참다 참다 폭발한 파트리샤에게 주먹을 날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끝이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단다. 정식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니 자기가 양육권을 포기할 테니 양육비는 줄 수 없다면서 말이다.


힘이 없는 파트리샤는 결국 아이들과 그 집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가봉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프랑스와 비슷해서 정식으로 결혼을 안 했어도 남자가 아이의 양육비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남자에게 한 달에 얼마간의 양육비를 지불하라고 통보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파트리샤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게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 일부의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아프리카 사회 한 이면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나?-

시어머니의 답 없는 시집살이와 남편들의 폭력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3. 두 지붕 한 가족?


막내 뭉치가 그곳 아이들로부터 중국사람이라고 놀림을 당하며 학교 생활을 힘들어할 때, 하미 Ramy라는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뭉치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연 친구였다. 하미 아빠는 리비아(북아프리카) 사람으로 보기에 상당히 부유해 보였다. 하미의 엄마는 밖에서는 늘 히잡을 쓰고 다녔다. 아빠가 아침에 하미를 데려다주고 점심때(뭉치가 다녔던 프랑스 초등학교는 거의 점심때 끝난다)는 엄마가 아이 픽업을 나왔다. 하미와 뭉치는 서로를 집에 초대하며 친하게 지냈고 덕분에 우리 부부도 하미 엄마 아빠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하미가 뭉치를 초대했다고 해서 아이를 하미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는데 하미 엄마가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나를 붙잡았다.(보통 프랑스도 그렇고 이곳도 아이를 초대해준 집에 데려다만 주고 부모는 인사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안이라 그런지 히잡을 벗은 하미 엄마는 놀랍도록 미인이었다.

아이들은 테라스 옆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영장 건너편에 또 하나의 집이 보였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수영장 건너편 집에서  중학생 정도 보이는 여자아이들 몇몇이 와서 하미한테 막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미 엄마가 움찔하며 계속 그들을 주시하였다. 내가 있어서 그런가, 뭔가 조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이 지긋한 여자가 바로 소녀들이 나왔던 그 집에서 나와 소리를 지르면서 하미를 나무랐다.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동시에 하미 엄마가 일어나서 자기가 가보겠다고 하였다. 나도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 여자와 하미 엄마가 아랍어인지 알 수 없는 언어로 언성을 높였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쩌나 하고 잠시 곁에 서 있다가 뭉치를 데리고 살짝 그 자리를 피해 나왔다.

며칠 후 하미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리브르빌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그녀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그때 그 여자는 남편의 첫 번째 부인이고 여자아이들은 남편의 딸들이라고 했다.

자기가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인데 아들을 낳은 사람은 자기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날은 원래 남편의 딸들이 친구들과 오후에 뭉치와 하미가 놀던 그 수영장에서 파티를 하려고 했던 건데 하미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방해를 하는 바람에 첫 번째 부인이 열받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하미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막상 내 귀에 들어온 건 그날 그녀 둘이 왜 싸웠는지가 아니었다.

그럼 한쪽은 첫 번째 부인과 사는 집이고 한쪽은 하미 엄마인 두 번째 부인과 사는 집인 거네?? 울랄라~~~

저녁마다 양쪽 집을 오가는 하미 아빠의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의 첫 번째 부인과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하미와 하미 엄마.

전혀 심플해 보이지 않는 어른들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을 아이들, 그리고 나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의 첫 번째 부인의 마음의 상처가 저절로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일부다처제'가정의 모습을 직접 보니 아프리카 여인들의 삶이 너무 기구한 것 같았다.



#4. 그녀들의 반란을 지지하며...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는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한 수단이 되었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는 가정의 갈등과  심리적 고통, 질투, 이기심 등 복잡한 상황을 낳는 '가정파괴범'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한 아버지 밑으로 엄마가 다르게 태어난 이복형제자매끼리 경쟁과 질투를 느끼며 긴장감속에 자란 일부다처제 가정 아이들은 여러 정신적 장애와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일부다처제에서  남자가 두 번째 부인을 맞기 위해서는 원래는 첫 번째 부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첫 번째 부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남편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지...

내가 만났던 어느 아프리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

‘아프리카에서 이혼은 여성에게는 사회적 재앙이다. 일부다처제는 이혼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편이다’라고...


남편의 통제권 아래에서 아프리카 여자들은 옛날부터 이어져온 관습과 차별, 폭력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 나라 가봉이나 에티오피아 등- 특히 에티오피아는 2018년 첫 여성 대통령이 선출됨 - 에서는 여성 지도자들이 사회 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불균형으로 이런 여자들은 소수일 뿐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아프리카 여인들은 대다수가 아직도 숨 죽이고 살아가고 있다.


조혼, 여성할례, 빈곤, 질병, 성차별, 거기에 시집살이까지..  아프리카에서 여자들에게 과연 '인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해외로 나가 교육을 받은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이 그들의 인권을 부르짖으며 할례를 반대하고 성평등을 주장하지만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그 목소리들이 닿기에는 아직 멀어 보인다.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오늘도 고단한 하루 속에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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