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레저 Jan 03. 2023

결혼을 미친 짓으로 만들고 싶진 않아.

[여는 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직은?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는 나는 원래 비혼주의자였다.(독신주의에 더 가까웠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의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느 정도 나이가 차도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무슨 문제가 있는 듯,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다니 신상에 특별히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혼에 대해서는 더욱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었다.

지금이야 부부가 살다가 헤어질 수 있는, 그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때는 흔한 일이 아니었고, 특히 이혼한 여자입장에서는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그런 시대였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유치원을 운영하셨던 엄마에게는 더욱 그랬던 것 같았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잦은 외도는 결국 두 분이 헤어지게 된 원인이 되었고 두 분이 법원에 제출한 이혼사유는 그 흔한 '성격차이'였다. 부모님의 이혼은 오빠와 나에게 상처와 절망을 남겼고 두 분의 헤어짐은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뿐 아니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결혼을 약속했던 첫사랑과 결국 헤어졌다.

이혼한 가정의 여자와는 결혼을 못 시키겠다는 예비 시부모의 반대에 부딪혔고 남자친구도 나도 어렸던 그때 우리는 그렇게 서로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는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으로 도망쳤다.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부모님에 대한 나의 원망이 끝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그곳의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은 어둡고 축축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40여 편의 글을 쓰면서 영국 이야기가 한 편도 나오지 않은 이유이다. 한국을 도망치듯 떠나 공부라는 핑계를 대고 영혼 없이 사는 삶이었으니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그리고 3년 후 프랑스에서 남편을 만났다.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던 내 삶에 그는 따스한 햇살처럼 다가왔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혼주의자였던 나 역시 결혼을 하고야 말았다.


그 당시 직장도 돈도 없던 남편과 결혼한다는 말에 엄마의 첫마디

미치지 않고서야 네가…


그와의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었을까?


프랑스에서 그와 함께 지지고 볶고 이십 년 가까이 살면서 사랑과 결혼, 이별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알게 모르게 프랑스인들에게 영향을 받아 한국을 떠나올 때와는 많이 달라져있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남편과의 결혼을 '미친 짓'이 아닌 '잘한 짓'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살았다.

그런 노력 끝에 신혼 초에 그와 헤어질까? 말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그때의 나의 고민과 망설임들은 이제 그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한국이 아닌 이곳 프랑스에서 가족이라고는 달랑 너 하나 나 하나였던 우리 부부는 이왕이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 아직도 열심히 사랑을 피우며 '결혼 짓기'를 하는 중이다.


비혼주의가 늘어나고 이혼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지금 시대에 한쪽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 애쓰며 소소하게 행복한 우리 같은 부부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글을 연다.



#1. 알고 보니 내 남편은 두 얼굴의 사나이?


그는 좋은 남자이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음식도 잘하고 집안일도 네일내일 없이 눈에 보이면 자기가 다 하는 편이다. 쇼핑을 해도 자기 것은 살 줄 모르고 이쁜 옷이나 신발이 보이면 내 것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다. 정말 어디 하나 버릴 게 없는 사람이다. 딱 하나 그 욱하는 성질만 빼고...


엄마의 결혼 반대로 인해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도 없는 조용한 결혼식을 프랑스에서 올렸다.

일생에서 가장 눈부시고 가장 시끌벅적해야 할 그날, 우리의 결혼 선언식이 있던 날은 그와 나 그리고 우리의 결혼 증인이 되어준 그의 친구 두 사람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날따라 유난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햇살이 수많은 하객들을 대신하여 축하해주는 듯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파리시내 작은 아파트에서 소꿉장난 같은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며칠 안된 어느 날이었다.

프랑스에서 처음 찾은 일자리에서 만족을 못했던 그는 결국 그날 밤 폭발하였다. 내 앞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폭주하는 그를 처음으로 맞닥뜨리며 나는 커다란 독수리 앞에 놓인 아기 병아리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알던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내게 꽁꽁 숨겨왔던 것처럼 전혀 다른 낯선 그의 모습에 속은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내가 알던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기감정을 컨트롤 못했던 그는 결국 자기 속으로 깊이 숨어 들어가 며칠째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그와의 결혼 생활을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이 저렇게 두 얼굴의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지...

그의 힘듦을 안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이 버젓한 직장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 결혼도 하였고 남자로서의 책임이 커진 것에 대한 부담감, 능력 있는 남편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며 절망했을 그의 마음을 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데 성숙하지 못한 그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며 연애가 아닌 결혼생활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그래도 있어야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다는 엄마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엄마의 그 말에 '결국 경제적 여유 때문에 아빠 바람났고 두 분 이혼하셨잖아요'라고 대꾸하고 싶었던 나의 독백도 함께 떠올랐다.


결국 엄마 말이 옳은 걸까?


#2. 딱 한 번만 맞짱 뜰게


그날 이후 남편은 자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또다시 감정을 드러내었다.

그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나에게 직접적으로 폭언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는 것 역시 나에게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저러다 어느 날 나한테도 그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를 사랑하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사람이지만 그가 가진 단점이 내게는 '나의 불행'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딱 한 번만 맞짱을 뜨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달라진다면 함께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날이 왔다.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폭발하는 그의 앞에서 나는 리모컨을 TV 화면에 세게 던져버렸다.

깜짝 놀라는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멈칫하였다.

그럴만했다.

그 당시 우리에게는 TV가 아주 비싼 값을 지불하고 산 우리의 첫 신혼살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우리가 갖고 있던 살림 중 가장 비싼 tv를 선택했던 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나의 경고였다. 그가  잃을 수 있는 것에는 나도 역시 포함이 되어 있으므로… )


화면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진 TV 리모컨이 부서졌다.

손이 떨렸고 마음속으로 겁이 났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조용히 흔들렸다.


이런 걸 원해? 정말?

부부 사이에도 서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해

자기의 바닥을 이런 식으로 내게 보이지 마. 나는 거절이야.

떨림을 감춘 내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해서 나의 것이 아닌 듯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식으로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마…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잖아?!

지금 힘든 건 잠시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고 아직 실패한 게 아니잖아


나와 그만 할거 아니면 너무 멀리 가지 마...

다시 평소의 자기로 돌아오면 나보다는 본인 스스로에게 더 부끄러울 거잖아,


그만해…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거

우리 함께 가자,,, 내가 도와줄게


떨리는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남편이 눈물을 참은 듯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3. 결혼을 '미친 짓'으로 만들고 싶진 않아!


내 인생에서 결혼은 없을 것이라 다짐했던 나의 결심을 깨뜨릴 만큼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 매일이 봄날일 거라는 기대는 안 했지만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인가...라는 생각을 할 만큼 혼란스러웠다.


그와 함께 할 것인가? 그를 떠날 것인가? 많은 날을 고민하였다.


내가 그에게 맞섰던 그날이 지나고 며칠 후 남편은 내게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가끔 화나면 혼자 훌쩍 자리를 잠시 비우기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단 하나의 단점이 사라진 내 남편은 이상적인 배우자가 되어 있다.(물론 나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주위에서도 그렇게 인정한다. 특히 우리 결혼을 반대하셨던 엄마가 )

지금까지 우리의 결혼생활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모두 남편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는 그를 나는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당시 불어 한 마디 못했던 나였지만 결국 직장을 얻었고 그를 곁에서 돕겠다던 내 말을 지키고 있다.


그를 바로 떠나지 않고, 가끔은 아니, 늘 마음속으로 그와의 이별을 고민했던 그때의 나의 진심은 사실은 나의 선택을 '미친 짓'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별만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노력 없이 그와 그렇게 쉽게 헤어지고 난다면 내 인생이 정말 구겨져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나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그를 보았던 내 눈을, 내 마음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그런 마음과 애씀이 그에게도 스며든 듯 남편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

.

.

결혼은 함께 가는 것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우리의 ‘결혼 짓기’가 잘 지은 밥처럼 언제나 고슬고슬 향기 좋은 맛이 나길 기대해 본다.


가끔은 설 익고 , 때로는 되거나 질게

생각만큼 잘 지어지지 않을 때가 오더라도

모든 시련은 과정일 뿐

쉼표하나 찍었다 생각하고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으리라.

우리는 함께니까…





트레저의 기막코막 아프리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