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사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다.

by 미고

꿈이란 사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다.

#언어에 재능이 있던 아이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이미 어른처럼 말을 잘했고, 유치원에서는 월반을 할 정도로 언어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나 스스로 돌이켜 봤을 때, 초등학교 때는 책을 대충 훑어만 보고도 독후감을 써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을 정도로 이야기를 참 잘도 지어냈고, 드라마를 보고 와서 친구들에게 얘기해주는 걸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시험 위주의 공부, 그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고민뿐이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했고,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대학에 갔다. 광고를 전공했는데, 막연하게 멋진 문구를 만들어내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첫 직장은 홍보대행사였고, 첫 업무는 클라이언트의 블로그에 글을 포스팅하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글 쓰는 일이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남의 물건을 홍보하는 글만 쓰다 보니 회의감이 찾아왔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돈까지 벌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설가는 왠지 따분하고, 시인은 나랑 거리가 먼 것 같고, 그래서 찾은 직업이 바로 ‘방송작가’였다. 그 시절 시트콤이 한창 인기가 많았을 때라, 나는 시트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시트콤 작가는 구성작가 중 예능작가로 분류가 되었는데, 예능작가만 양성하는 곳이 없어서 구성작가의 전반적인 업무를 가르치는 교육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시트콤작가가 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고, 나는 빨리 돈을 벌어야 했기에 일단 교양 프로그램의 막내작가로 입사했다. 교양작가가 되면 일단 아는 것이 많아질 것이고, 글쓰기 능력치도 더 높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바로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주어지진 않았다. 막내작가들이 해야 하는 일들, 이를테면 자료조사, 섭외, 메인작가의 잔심부름 등의 미션을 다 통과해야만 서브작가가 되고, 그제야 조금씩 글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때까지 버텼고, 드디어 프로그램의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재미있었고, 곧 일이 익숙해지자 지루해졌다. 또다시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거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 맞아?” 잠깐만! 나 시트콤 작가 되고 싶어서 시작했잖아? 이거 내가 하고 싶었던 거 아니잖아? 그런데 이미 방송가에선 시트콤은 사라지고 있던 시기였다. 유행이 끝난 것이다.


그럼 뭘 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드라마였다. 그래 맞아, 나는 진짜 안 본 드라마가 없었지. 시트콤도 드라마와 매한가지지. 그래, 나는 '스토리가 있는 글’을 쓰고 싶어.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드라마 작가 교육원에 들어갔다. 단막극 쓰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내가 굳게 믿었던 나의 ‘재능’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전부 떨어지고,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기엔 자존심이 상해 계속 썼다. 운이 좋게도 ‘웹드라마’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던 시기였고, 나는 두 작품을 집필해서 론칭에도 성공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겨우 론칭에만 성공하는 수준이었다)

이제 어디 가서 ‘웹’ 드라마 작가라고는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조금씩 내공을 쌓다 보면 어느새 김은숙, 노희경, 김은희 작가 같은 미니시리즈도 쓸 수 있겠지 희망에 가득 찼다.


그러던 중, 좋은 인연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아이를 가졌다. 글을 쓰는데 아이가 전혀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집에서 노트북만 있으면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아이를 돌보면서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현실은 내 계획에 비협조적이었다.


처음으로 입덧이라는 지옥을 경험했다. 지옥에 가면 생전에 내가 남긴 음식들을 다 섞어서 먹게 한다는데…

모든 음식들이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고, 구수한 밥 짓는 냄새조차도 똥냄새처럼 느껴졌다. 원래 아이를 좋아했고, 아이가 생기면서 너무나 기뻤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산송장처럼 누워있기만 했고 삶에 대한 의욕이 모두 사라지려고 할 때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회복되고, 입맛이 돌아오고 먹고 싶은 음식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임신도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배도 아직 무겁지 않아 활동하기에 아주 적당했다.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슬기로운 임신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계획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하기 전에 계획표부터 공들여 적는 학생, 바로 나다.) 다시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 돌아가 그동안 미뤄놨던 글을 쓰기로 했다. 언젠간 회당 억대 원고료를 받는 대작가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달콤한 상상은 나에게 독이 되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고, 나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더 이상 스토리가 진행이 되지 않으면, 불현듯, 이러다 언제 성공해서, 언제 돈 벌지?라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견딜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이제 아이도 생겼는데, 이 아이의 미래와 우리 부부의 노후를 월급쟁이 남편에게만 의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얼른 돈을 벌어야 한다’ 이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지망생에게 돈을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내 커리어를 살려서 글을 쓰는 일로 돈도 벌고, 남는 시간엔 드라마를 꾸준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신기하게도 전에 함께 일했던 작가님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뭐 하니? 같이 프로그램 하나 할까?” “저 지금 임신 중이어서 짧은 프로그램엔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나름의 긍정의 사인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렇구나. 너무 축하해. 그럼 몸조리 잘하고 나중에 연락할게.” 어떤 프로그램인지, 론칭은 언제인지, 내 포지션은 무엇인지 그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한 채, 통화는 짧게 종료되었다.


‘나 지금 임신했다고 까인 거야…?’ 처음 겪는 차별의 종류인지라 많이 당황스러워 순간 멍해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그래, 임산부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지. 밤샘하는 경우도 많고, 또 현장에 많이 다녀야 하는 방송일 수 있는데 일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난감해지니까.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곤 빠르게 판단했다.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거리라도 찾아봐야겠다고…


난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가입을 했다. 일반인 혹은 기업에서 일거리를 의뢰하면 프리랜서 전문가들이 가격을 제안하고 일을 수행한 뒤 수익을 나누는 구조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먼저 진입해 의뢰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전문가들에게 일이 몰리는 건 어쩔 수 없기에 처음 진입한 나로서는 일을 따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가입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내가 상대적으로 단가를 높게 불러서 그런지, 작가의 원고료만 문의하고 발 빼는 사람들만 만났고 결국 한 달 동안 수입은 0원이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까지 김은숙 같은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무수입으로 글을 써나갈 수 있을지 앞이 깜깜했다. 어쩌면 나의 재능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착각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건 아닐까.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꿈을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찾아오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러다가 아이는 커가고 나는 나이가 들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놓치면 어쩌지?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글로 먹고살 수 없는 때가 왔을 때에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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