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글이 상 받는 시대, 나는 왜 여전히 펜을 드는가
몇 년 전, 일본에서 AI를 일부 사용해 쓴 소설이 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그땐 ‘이제 그런 시대가 오고 있구나’ 싶었다. 대단하다는 감탄보다 솔직히 약간의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현실이 되었다. 시, 소설, 광고 문구, SNS 콘텐츠까지… AI는 이제 웬만한 글을 사람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쓴다.
나는 그런 시대에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글을 쓴다. 왜 그럴까. 가끔은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처럼 글로 먹고사는 사람은, 이런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정말 이제는 글쓰기도 AI가 하는 게 더 나은 걸까.
막내 방송작가 시절이 떠오른다. 자료조사, 프리뷰(촬영된 영상의 대사를 하나하나 타이핑하는 작업), 자막 정리, 편집 구성안까지. 말 그대로 ‘노가다’였다. 잠은 늘 부족했고, 손목은 아팠고, 자존감은 떨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작가가 됐나 싶었던 날들도 많았다. 그 시절에 지금 같은 AI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분명히 많은 업무가 더 빨라졌을 거고, 어쩌면 나는 방송작가 일을 더 오래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하나 확실한 건, 그 몸으로 부딪쳤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랜만에 글이라는 것이 줄 수 있는 울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더 반가웠던 건, 예전 책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던 시절,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를 우리 방송에서 소개했던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때도 그녀의 글은 깊고 조용한 울림을 주는 힘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름을 다시 보게 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림원은 그녀의 수상 이유로 “역사적 상처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5·18과 제주 4·3 같은 역사적 사건을 그녀는 직접 겪지 않았지만, 사회가 공유하는 집단적 기억과 상처를 내면화해 글로 풀어냈다. 나는 이 설명을 읽고 오래 생각에 잠겼다.
맞다. AI는 글을 정말 잘 쓴다. 문장도 매끄럽고 구조도 탄탄하다. 그런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는 게 없다. 왜일까. 그 글에는 ‘누가’, ‘왜’ 썼는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잘 만들어진 글일 수는 있어도,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감탄은 해도, 공감은 어려운 것이다.
AI는 모든 정보를 학습하고, 그걸 잘 정리한다. 그러나 열한 살 때 엄마가 나를 떠났을 때의 감정, 막내 작가 시절 밤새며 느꼈던 좌절,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날의 두려움과 설렘은 알지 못한다. 그건 AI가 가진 데이터로는 쓸 수 없는 영역이다. 내가 살아온 역사, 내 안에서 오래 숙성된 감정, 그게 글로 나올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쓴다. 누구보다 빠르게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은 나에게 기억이고, 감정이고, 존재의 방식이다.
요즘 나는 ‘AI 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게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기계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맥락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고.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끝까지 내 손으로 써보려고 한다.
그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줄, 내 이야기를 쓴다.